된서리가 내린 듯한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 12:51
가을 불씨가 급히 사그라든 느낌입니다. 가을이 이렇게 가버리는 것 아니냐며 사람들은 아쉬워합니다. 우리는 아쉽지만 다른 것들은 어떨까 싶습니다. 사람도 이렇게 속수무책인데 다른 것들은 과연 이대로 겨울을 맞이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될 무렵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금방 좋아질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 정도의 신고 辛苦는 그동안 겪어온 일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견디고 참았습니다. 백신도 맞아가며 불안을 달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해가 다 지나가는 지금도 우리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에 역사는 지금을 무엇이라고 이름 지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이 세상밖에 살지 못하는 나는 그 세상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무엇을 우리는 배우게 되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 일지요. 과연 우리는 달라질까 궁금합니다.
날이 급히 추워지면 안 됩니다. 농작물이든 꽃이나 열매, 동물이나 곤충들까지 죄다 피해를 입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 유능하다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죽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살아있는 것들을 죽게 해서는 안 되는데 어쩐지 이런 기후 변화도 다 사람들 탓인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과연 그 대가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지금보다 이다음 세대가 더 걱정스럽습니다.
가을은 계절의 여왕이어야 합니다. 책을 읽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고 잠을 자기에도 좋으면서 걷기에도 안성맞춤이어야 합니다.
가만있어도 행복해지는 계절이 가을인데 가을이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열이 식으면서 창백해지고 있습니다. 심폐소생술이라도 해야 하는 그런 응급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디가 불편한 것일까요. 어디가 아픈 것인지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합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이 시작할 즈음에 내걸어 놓은 푯말입니다.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을을 위해 기도해 본 적이 한 번도, 누구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늘 거기 있었으니까, 항상 좋은 것이었으니까, 언제나 가을이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시험 잘 보라고 기도하고 괴로워하지 말라고 기도하고 나를 위해서 빌었습니다.
수련, 수양, 수행으로 사람이 다져지고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무엇으로 그것들을 행하는지요.
글을 쓰면서 수련하고 기도하면서 수양하며 걸으면서 수행하는 마음을 갖고자 합니다.
저는 그렇게 준비했습니다. 이제 방향을 잡으면 됩니다.
´가을´을 위해서, 그것이 제가 갈 방향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