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5코스 둘째 날
2021, 10월에,
'인간은 서두르지만 신은 그렇지 않다.'
오늘 아침은 글쎄 이 말이 눈에 마음에 그리고 손에 잡힌다. 날은 선명하고 그만큼 서늘해졌다. 푸르다는 말밖에 없을까 싶을 만큼 하늘이 맑다. 벌써 10월 마지막 날이다.
뱀사골 계곡을 콧노래 부르면서 내려왔던 날부터 보름이 지났다. 첫날 우리가 다녀온 그 웅숭깊던 계곡이 고와지고 있을 것이다. 단풍이 짙어가는 거기를 여기 앉아서 상상한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날을 기록한다. 아니, 나도 그려보기로 한다. 붓을 들고 마음으로 눈을 감고서.
마음이 붕 뜨려던 찰나에 안전 문자가 먼저 떴다. 08시 기준 전일 12명 확진자 발생. 금세 심각해진다. 아이들아, 지금은 2021년 10월이었다. 너희가 사는 세상은 무슨 일로 시끌거리느냐, 추억처럼 지금을 이야기하거들랑 내 오른편으로 가을 하늘이 어느 때보다 창창 蒼蒼했다는 것을 공감해 주렴, 너희는 토요일 아침에 달콤하게 자고 있다. 그 맛이 구수하기로 숭늉보다 더 할 것이다. 나는 조용히 우리를 보름 전으로 데리고 또 여행을 다녀오겠다. 그동안 안녕.
그렇게 인월에서 자고 나면 가뿐해진다. 사람이 착해지고 싶은 동네, 그러면 하나의 카피 문구가 될까. 나는 거기를 그렇게 부른다. 거기 갈 때마다 나는 착해졌다. 그 동네에서 먹는 모든 먹거리들에게 감사하고픈 마음이 절로 든다. 고마운 밥들, 찬들, 냄새는 추억을 만든다. 어린것들이 맛있다며 밥숟가락이 바쁠 때 부모는 허술해진다. 착해진다는 것은 빛이 잘 드는 거, 바람이 송송 맡아지는 거, 그런 풍경 아니겠나.
천천히 가자, 기분이 좋은 것을 말해서 무엇하냐,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많다. 그리고 길은 하나, 가기만 하면 되는 길에서 우리는 너그러워지자. 나그네가 되어도 좋으니까 오늘 하루는 그렇게 쉬엄쉬엄 가기로 하자.
강이는 뭐였더라, 진단받은 이름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찾을 때까지 노래나 하나 듣자.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 일 것이나 언젠가....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
내가 너에게 쓰는 모든 것은 즐거움이었다가 즐거움이었다가 즐거움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것이 편지였든, 하나의 시였든, 일기 아니면 마음 같은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즐거웠다고 나는 흡족할 것이다. 소녀여.
강이는 발 안쪽 주상골이라는 부분에 추가 뼈로 인해 발생하는 통증이 있다. 오래 걸으면 절뚝거린다. 정형외과에서 '부주상골 증후군'이라고 알려줬다. 더 심할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도 할 수 있지만 커가면서 점차 좋아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충격이 심한 운동을 삼가야 한다. 강이는 나이에 비해 인내심이 좋은 편이다. 지금까지 강이가 걸어준 덕분에 우리가 걸어낸 길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빠가 무심했다고 후회하면서 내 가슴을 두드려댈지도 모르겠지만 너와 걸었던 모든 길이 행복이었다는 말을 드라마 대사처럼 되뇌어 본다. 내 삶의 전성기는 너하고 길 위를 거닐 던 그날들이었구나. 내 삶의 퇴장에서도 나는 또 너하고 길을 걷기를 바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으로 들어설까, 오래전에 걸었던 길로 들어설까. 딸은 아비에게 눈물 같은 보석이다.
지난봄에 맺었던 동강 마을, 거기 슈퍼 하나가 생각났지? 거기에서 우리 4코스를 마치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서 저 다리를 건넜잖아. 버스를 기다렸잖아. 그리고 날았잖아. 꿈처럼.
그날은 햇살에 기운이 실렸었다. 동강 마을에서 산청 함양사건 추모 공원까지는 차로 달렸다. 도로를 걷다가 먼저 지쳐버리면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하는 5코스에서 산이와 강이가 두 손을 들어버릴 것만 같아서 모르는 척 양보했다. 아빠하고 엄마도 나이가 나이니까, 우리 그러기로 했다!
산길로 들어서면서 몇 년 전에 여길 왔던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길을 따라 걸으면서도 기억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여기는 반갑고 저기는 낯설고, 여기는 알겠고 저기는 모르겠다. 나를 아는 사람들도 내 기억과 닮았을까. 나를 통째로 아는 이는 세상에 없다는 생각에 물길이 떠올랐다. 길을 따라 흘러가도 속을 알지 못하고 노를 젓는 일이 찬연하구나 싶어 또 한 번 조물주의 신비에 탄복한다. 길에서는 내려놓는 일이 버릇이 된다. 알려고 하는 것들에서 자유로워져도 무방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산초나무의 산초와 개오동나무는 능소화과라는데 능소화가 그만큼 힘이 센 것이었나 싶은 것과 어머니가 어렸을 적에 먹기도 했다는 때죽나무를 볼 때마다 무엇을 먹었을까 싶은 것들. 이끼가 예쁘게 자리 잡은 작은 바위에 곁을 내주는 물푸레나무 밑동에는 돌이끼가 족두리 모양으로 피었다. 둘이는 키 작은 남자와 늘씬한 여자 같아서 행복해 보인다. 물론 어느 쪽이 더 좋을까는 궁금하지도 않다. 살아서 천 년을 살고 죽어서 오백 년을 더 살으라는 말로 둘을 응원했을 뿐이다. 아마 그때쯤에 우리는 상사폭포를 지나치고 있지 않았던가 싶다. 위험하다고 막아놓은 표시 안쪽으로 높은 직벽이 보였다. 수량이 적어 물 흐르는 소리도 잠잠했다. 폭포란 말도 바위와 물이 그려내는 풍경이었다는 것을 심심하게 바라봤다. 둘이서 만들어내는 하나, 그런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
쌍재에 오르면서 몸에 물기가 돌았다. 촉촉한 아침 숲 기운이 들숨과 날숨을 타고 내 속에 흘렀다. 발이 물들었다. 초록, 단풍으로 향해가는 저 단정한 걸음들이 보내는 그린 색의 열렬한 엔도르핀을 우리는 고급스러운 창가에서 잔을 들어 건배, 창이 넓어서 하늘이구나, 그 하늘만 보이는 창으로 비치는 10월의 어느 날이 우리들이었다니, 산에서 마시는 칵테일에는 동심, 구절초, 우리들 각자의 나이, 땀 하고 웃음을 섞어서 셰이크, 셰이크!
길에서 먹는 밥은 왜 맛있지?
흐뭇한 것이 두 군데 있는 것 같다. 임꺽정 같은 10 권짜리 책을 다 읽고 자리에 누운 밤이나 오늘처럼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멀리 내다보이는 것들에 뜻 모를 애정이 솟는 것은 사람을 흐뭇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우리 노래 하나 더 듣자.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어떠냐, 너희들 이름이 사알짝 나오는 저 노랫말은 어떠냐, 나는 신경림 시인이 좋다.
쌍재를 지나 지리산 둘레길 중에서도 손에 꼽는 고동재 위에 서보자. 아빠가 그랬지, 여기는 꿈에 나오더라고.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수고했다, 꼬맹이들아.
수고로운 것들로 근사한 것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지리산들을 너희도 나처럼 보고 싶어 하려면 많이 수고해야 할 것인데 그래도 괜찮겠냐, 아이들아.
감정은 불쑥거리더라도 마음은 결을 잃지 않기를 고동재 위에서 빌어본다. 저 아랫마을에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는 날에도 우리가 불렀던 노래로 갈 곳을 잊지 않게 뒷바람이 되어주는 그런 사람이 사는 마을이 거기 있다. 사진을 찍자.
절정에서 부르는 노래로 사진을 찍어두자. 찰칵!
맨발로 걷는 시범을 보이고 싶었다. 짧았지만 그것으로 됐다. 산에서 신을 벗고 맨발이 되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희는 나를 특이하게 바라봐라. 아니 좀 더 이상야릇한 것도 좋다. 봄볕에 졸린 강아지가 되어도 좋다. 양귀비꽃인가 궁금해하는 그런 시선도 바람직하다. 틈이 나면 그래서 여유가 생기거든 그때 너희도 그래 봐라.
너희는 너희끼리 유쾌해서 보는 사람들마저 흥이 나게 하는 남매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나 엄마는 피식 웃음이 나오려다가 괜한 슬픈 것도 거기 끼어드는 것을 느낀다. 정말 좋은 것은 이렇듯 따뜻하면서 서늘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가 보다. 앞서서 달려가는 너희는 나를 보고 도망가는 흉내를 낸다. 잡힐 것처럼 늘어지다가 후다닥 도망가는 제스처는 나를 끌어들이려는 너희들 속셈이다.
나는 무엇이 되어 너희를 잡을까.
"와, 저기 공부가 나타났다!"
강이가 외치면서 도망친다. 나는 알아듣지 못해서 쫓았지만 엄마는 다 알아듣고 자지러진다. 세상에나, 공부가 나타났다니!
산에서는 다들 즐겁지 않더냐, 시절도 즐거워하고 가을도 저 나름대로 반가웠다는 표시를 건네지 않더냐.
수철 마을에 왔다. 택시를 기다린다.
우리가 거기 다녀온 것은 10월 한가운데, 지금 그 길을 정리하는 오늘은 10월 끄트머리.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너희가 잠들고 나서도 너희 발을 주물러주는 엄마처럼, 길들은 우리가 모르고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등을 토닥거리는 것이 아닐까. 그 힘으로 우리가 다음 날 아침에도 일어나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내내 모르고 가더라도 내내 지켜주는, 그런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