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곧 오려는 듯 밖이 춥습니다.
화톳불도 그렇고 철새들도 그렇고 심지어 소설책도 그렇습니다.
끝이 보일 때쯤에는 용트림을 합니다.
그것이 사는 재미가 되기도 합니다.
작은 회전, 큰 회전, 그것보다 더 거대한 회전으로 가득한 것이 곰살스럽기도 합니다.
흐르는 강 하나를 봐도 그렇습니다.
몸을 풀듯 살살 움직이면서 흐르는 저 고요함이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정경이라면 폭우가 내린 뒤에 거세게 훑고 지나는 그 격렬함이라든지 가을날 낙화암 앞을 유유히 흐르며 하늘을 다 담아내는 백마강의 정취는 층층 깊이마다 무늬가 다릅니다.
석 달 봄에도 날마다 사계절이며 하루 봄날에도 시시각각 푸르기가 다르게, 돌고 구르고 나아가는 물살. 그 물살의 얼굴과 주름이 내는 돌돌한 소리들, 그것을 가지고 손금을 봐준다며 강물을 희롱하는 나그네는 구름이나 타고 다니는지, 세월도 마다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둘이서 탁배기라도 나누는지, 꺽꺽거리며 생각도 애인도 추슬러 봅니다. 둘이서 통하는 것이 지기 知己를 얻은 듯합니다. 벗이 든든합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 하고 물으셨다. > 마르코 8:23
내 눈에 침을 발라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어디서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눈발이 비치기에 옷을 갈아입고 나섰습니다. 봄 같으면서 겨울, 겨울이면서 봄을 누릴 수 있는 순간은 행운입니다.
송이를 맺지 못하고 흩어지는 물고기 비늘 같은 반짝임이 차분히 한쪽 공간에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살아있어서 보는구나.
함라산에는 발자국 소리도 없이 산새가 한 마리씩 푸드득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