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15, 토요일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루카 12:11-12
어쩌면 이렇게 금방 만날 수 있었을까, 무릎을 치며 어젯밤 일을 떠올립니다.
학생들 시험도 대부분 끝나고 비교적 한가로웠던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사람이 한가로우면 편하기도 하지만 심심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겉은 멀쩡해서 그것으로는 눈치챌 수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겉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속으로 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다행히 속에는 속이라는 것이 있어서 무슨 일이든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니까 ´저도 속이 있다면 그러지는 않겠지´ 그런 말로 우리는 불안을 다스리기도 합니다. 겉은 어떤 면에서 더 수고스럽습니다. 항상 1차적이니까요. 먼저 맞서고 먼저 드러나며 깨지고 다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치료가 상대적으로 쉬운 까닭에 잘 낫는 편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의 겉이 자랑하고 멋을 부리고 싶어 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언제 다칠지도 모르는데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 저도 살 것 같을 것입니다. 다시 속으로 돌아와서, 속이 보내는 ´신호´를 살펴봅니다. 어제저녁은 무엇을 해도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내내 고요했지만 무채색에 가까운 쓸쓸한 것이 있었습니다. 98페이지에서 99페이지로 넘어가지 않고 거기 어딘가에 빠져 헛바퀴를 돌고 있었습니다. 보험회사에 연락하면 되는데 어쩐 일인지 그대로 밤이 깊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끄고 혼자가 되기로 합니다. 혼자 달려온 길에서도 혼자가 됩니다. 밤이 가르쳐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때보다 늦게 퇴근을 하고 뒷정리를 마친 아내와 나란히 누워서 방금 전에 촛불을 끈 이야기부터 두런거렸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것도 속이 보내는 신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천천히 아내가 하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다시 밤이 한층 깊어졌습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직원들 이야기, 그 직원의 가족 이야기, 그러다가 우리 어머니 이야기, 아내는 이야기가 많은 별자리에서 태어났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습니다. 다 끝났구나 싶었을 때는 내일 강이 생일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자기 생일이라고 아이스크림 케이크 사 오라고 그러고 내일은 친구들하고 바쁘니까 오늘 촛불 켜자고도 그러는 거 보라며 재미있어합니다. 잠을 재우지 않으려고 그러나, 싶었습니다. 잠시 즐거운 생각에 빠져 노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다가 그랬습니다.
결국에는 그럴 거 같아. 낮에 단편을 읽었는데 거기에 마침 위 수술을 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대목이 나오더라고. 이렇게,
¶평소 식욕이 왕성했던 아버지는 그러나 절반 이상을 들어낸 위 때문에 링거액으로 말년을 연명했다. 어떤 요리든 맛깔스럽게 만들어내는 제이미의 부엌에서도 아버지의 끼니를 장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수고로웠을 아버지의 병상을 지켜준 것도 텔레비전이었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다 운명하셨다. - 김경욱, 나비를 위한 알리바이에서
결국에는 나도 그럴 것 같아.
잠시 어두운 방안에 눈만 반짝거렸습니다. 우리의 속이 드러나는 빛, 그 빛은 순색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빨갛고 노란, 파란빛, 칸나 꽃 같은 속이 피었습니다.
마흔여섯에 수술을 했으니까 - 내 속으로는 그래, 이건 뭐 슬프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 쉰여섯, 예순여섯이면 정말 선방한 거거든.
나는 그런 말을 좋아한다. 다음과 같은 말,
아마 당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오래 살지는 못할 거야. 육십 다섯을 넘으면 다들 힘이 떨어지더라고요.
멀쩡했던 사람을 괜히 내 속으로 전염시킨 것 같았다. 아니, 내 속이 그 속으로 스며들었다. 속이 속을 만지는 속에서 우리는 지혜롭기로 한다. 속에는 그런 힘이 있으니까, 따로 거드름 피우지 않아도 서로 알아보는 속들이 얼마나 편하던가.
그러니까, 슬픔이나 걱정을 애써 끌어올 것 없다는 거지. 끝을 알고 가는 길이 즐거울 수는 없어. 내 속은 그걸 알고 있는 거야. 어느 날은 더 진지하게 그 사실을 바라본다는 것이고.
나도 그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렇게 지내면 우울증 걸릴 텐데, 매일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안심이 돼요.
그렇단다, 나를 보고 안심하고 그 안심으로 자기의 속을 달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 속은 흔들린다. 촛불이 밝았다. 강이는 촛불을 불면서 항상 소원을 빈다. 강이 생일에는 그 노래를 듣는다.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걱정하지 않은 지 얼마쯤 됐을까.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무엇일까. 더 좋은 것은 없는 날들이 눈만 뜨면 생겨난다.
태어나기 좋고 떠나기 좋은 날에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 기도를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