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6, 수요일
"대환아"
"네"
가을빛 아래에서 우리는 정겨워 보였다.
지금 그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
이 아이를 처음 본 것이 언제였나, 막연히 봄날이었기를 바랐다.
울긋불긋 엑스 표가 마지막 햇살을 탐하듯 가득했다. 왜 이렇게 빛날까, 나른했다.
"너 멋지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잘했어, 그거면 잘한 거야, 좋다, 야!
엄마들한테도 거짓말을 한다.
머리가 좋아요, 조금만 노력하면 좋을 텐데요, 그러다가 잘하더라고요.
말이 짧아지고 말을 마치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 기껏 일하고 미안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거짓말은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내가 환해지지 않는다. 밖을 밝히더라도 안이 어두운 말, 그게 거짓말이다.
무엇보다도 감흥이 없다. 밖에서도 안이 보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가 늘 엄마 있는 데를 알아 놓고서 뛰어노는 것과 같다. 불 켜진 안은 보기만 해도 따뜻해서 안심이 된다. 거짓말에는 의지할 만한 온기가 없다. 그래서 길을 밝히는 불로 삼지 않는다. 곧 꺼질 테니까. 세상에는 그런 불빛들이 많다. 물속 고기를 유인하는 빛, 일확천금을 보장하는 빛, 행복한 미래로 가는 열차에서 쏘는 빛, 빛 투성이다.
사랑받고 사랑한 기억이 사람을 살린다. 사람을 돕는다.
대환이 책에는 XX가 당당했다. 잘 틀리면 좋은 거라고 그랬잖아요. 내가 던진 말이 거기 떨어져서 꽃이 피는 것을 볼 때 환해진다. 내 안에 불이 켜진다. 대환이와 내 옆으로 시냇물 소리가 흐르는 듯했다. 너는 그 말을 믿냐.
꽃처럼 웃는 아이에게 반할 것 같아서 콧바람을 내었다. 네 너의 시절은 좋아라, 그랬으면 좋겠다.
대환이를 만나고 그때 어머니에게 보낸 메모를 찾아본다.
¶ 2022, 0424, 안녕하세요, 대환이 어머니.
대환이하고 공부하는 장면은 마치 호숫가에 나와 있는 느낌입니다.
아이는 물속에 그림자도 들여다봤다가 물 밖에 하늘도 올려다보는 여유가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달리다가 문득 돌아서서 잊었던 물건을 다시 찾아가는 귀여움 같은 것도 있습니다. 부담을 주지 않되 큰 것은 작게 나눠서 건네주고 있습니다. 대환이가 좋은 자질을 많이 갖춘 덕분에 옆에 있는 사람이 덩달아 격이 높아지는 기분입니다.
자기의 X 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많이 동그라미를 그리게 될까.
그 생각을 했습니다.
틀려서 웃고, 틀려서 고치고, 틀려서 조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똑바로 갈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들어 올리고, 광화문 거리에서 들어 올리고 내 마음속에서 들어 올리는 XX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왜 틀린 줄을 모르는 것입니까. 그런 적 없다는 말하고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오용하고 과용하는 시대입니다.
안이며 밖을 모두 어둡게 만드는 일은 그만 멈춰야 합니다.
속고 속이는 거짓은 위선으로 치닫고 위선은 분열을 초래합니다. 편을 가르고 결국 모두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곳에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