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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Nov 24. 2022

기도 55-1

봄이 되고 꽃이 되고

2022, 1124, 목요일



아이가 꼬마였을 때는 이런저런 퀴즈들을 자주 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를 시험공부하라는 말이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 퀴즈가 돌아다니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




11월이 따뜻하니까 아이들이 벌써부터 눈이 내리지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순전히 눈 때문에 겨울을 좋아하는데 춥기만 하고 눈이 내리지 않으면 얼마나 황당할까 싶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이 퀴즈를 외국인들에게 들려주면 다들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습니다.




"물!"




힘 있게 대답하는 사람일수록 ´봄! ´ 그러면 그 웃음이 진해지고 커집니다. 그래, 그래, 그래, 연달아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합니다.




그런 답을 주워 담습니다.




집게손가락 두 마디가 될까 싶은 조그만 입에 물음 하나를 물어줬던 아침, 아이 등 뒤로 눈이 부시게 쏟아지던 햇살을 다시 기억합니다. 너는 아직도 그 꽃을 말할 수 있을까.




"산이야, 제비는 제비인데 날 수 없는 제비는?"




"제비꽃"




그때 그것은 꽃이라고 일러주지 않아서 많이 다행이었습니다. 대신에 어떻게 제비꽃을 알았을까. 그것만 신기했습니다. 내가 ´수제비´ 그러면 아이가 ´물수제비´ 그러던 시절이었습니다.


어깨에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줄기차게 뛰어다니던 아이가 꿈같습니다.




앞으로 내가 주워 담을 수 있는 답들은 얼마나 더 있을까, 아직 내 주머니는 충분히 여유가 있나. 그것들을 어디에다 쓸까. 모처럼 해정한 생각들로 허리를 펴고 자세를 고쳐 앉습니다.




한 달 전, ´제빵공장 사고사´가 있었습니다. 평택 제빵 공장에서 20대 여성 근로자가 사망했습니다. 고인의 평안한 안식을 빕니다.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의 답들이 흩어졌습니다. 시신은 거뒀지만 그 답들은 누가 챙겼을까요. 아이 적부터 모았던 소중한 그것들 말입니다. 공장 한쪽 구석에 차갑게 식어 있거나 이태원 거리에서 울고 있으면 어쩌나 싶습니다. 누가 그 답들을 달랠 수 있을까요.




다음은 박노자 씨가 쓴 대한민국을 위한 불편한 제안에서, 그 뒤에 것은 1989년에 나온 김향숙 씨의 단편, 얼음벽의 풀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두 글은 30년의 시간 차이를 무색하게 합니다. 한국이란 공간의 어떤 부분은 너무 빨라서 당황스러운데 어떤 부분은 너무 느려서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 한국에서 가장 전형적인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은 바로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이다. 하루에 2~3명이 떨어져 죽고 깔려 죽고 감전 사고를 당해 죽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거나 단신 보도만 된다. 4년 전에 ´인건비´를 아끼려는 기업의 탐욕으로 혼자 작업하며 컨베이어 벨트로 몸을 집어넣어야 했던 김용균 노동자는 머리가 기계에 끼여 절단된 채로 숨졌다. 그나마 이 끔찍한 죽음은 세간의 이목을 끌어 ´김용균법´의 입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법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보호하는 데에 계속 실패한다. 정부는 ´위험 작업 2인 1조´를 공공 부문에서 의무화했다고 하지만, 이 지침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김용균이 일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약 2년 전에 또 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역 작업을 하다가 2톤 기계에 하체가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도 김용균처럼 혼자 일해야 했던 것이다. 중략.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목숨은 파리 목숨인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지경이다. - 박노자, 당신이 몰랐던 K 98p.




¶ 한 달 꼬박 일한 대가가 방값, 쌀값, 연탄값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부당한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저임금은 우리를 쩨쩨하고 비정한 인간으로 만든다. 서로 쪼들리다 보니 부부 싸움이 잦고 옆방 이웃과도 수도세, 전기세 백 원, 이백 원 가지고 악착같이 다투고 싸운다. 친구와 동료와의 사이조차 내게 이득을 줄 놈인가 손해가 될 놈인가를 먼저 통박부터 잰다. 중략


우리의 관심은 자연히 먹고사는 걱정에만 매이게 되어 전 가족의 유일한 밑천인 내 몸뚱어리와 직장의 일자리와 처자식 이상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삶이 허망하고 공장과 사회에서 당한 억울함이 엄습해 올 때 한잔 술과 싸구려 향락으로 위안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뚜렷한 희망도 없이 텔레비전 상식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 채 무지하고 폭 좁고 편협한 인간으로 점차 몸마저 노쇠해 간다. 드디어 우리는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인간, 꿈과 희망조차 상실한 비참한 임금 노예가 되어 허덕이며 죽어가고 만다. - 김향숙, 얼음벽의 풀 가운데.




산이야,


아빠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아빠는 정규직도 아니고 돈 받고 글 쓰는 사람도 아니고 건강한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공부하라´고 자꾸 이르는 것도 같다. 과연 그 길밖에 없을까. 늘 그 생각을 한다.


우리가 주고받은 ´답들´은 어디에서 뛰어놀고 있을까. 아직도 따뜻할까.


너는 의사가 될래, 판검사가 될래, 대통령이 될래?


아니면 사장이 되고 싶냐, 교수가 꿈이냐?


무엇이 되고 싶으냐. 노동자는 어떠냐.


아무것도 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것도 아닌 너였으면 한다. 너는 자유가 되어라. 봄도 되고 꽃도 되고 그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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