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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Nov 28. 2022

기도 58-1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2022, 1128, 월요일



백명이라고 쓰지 않고 백 명이라고 쓰는 것처럼 피부가 하얀 사람을 백인이라고 쓰지 백 인이라고 쓰지 않습니다.


사람의 고백이 당사자에게는 신중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찮은 것이 되고 맙니다. 언젠가 이렇게 적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백인대장´이 얼굴 하얀 사람의 별명 같은 것인 줄 알았다고. 그러니까 대충이었던 것입니다. 관심이 없으니까 아무리 성경을 보고 듣고 해도 10년 전, 20년 전과 같은 상태가 계속될 뿐이었습니다.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만 읽었어도 이 사람하고 이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 정도는 놓치지 않습니다. 무턱대고 백인대장은 그 백인대장인 줄만 아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의 베드로인 줄로만 줄기차게 믿는 것입니다. 늦게라도 깨우치면 다행스럽습니다. 혼자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 특별한 맛이 돕니다. 아차 싶으면서 창피한 줄 압니다. 늘어나는 흰머리만큼 내 고백도 하얗게 나를 덮습니다. 세월은 망각의 전위대, 나는 그 후위를 맡고서 세월이 빠뜨린 것들을 애써 처치합니다. 잊히는 것과 잊는 것들 사이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를 ´부끄러움´으로 식사를 합니다. 최후의 식사는 내 부끄러움의 만찬일 것입니다.




¶ 다음은 하사관인데도 ´로마 군단의 등뼈´라고 불린 백인대장이다. 공화정 시대의 유물로 여전히 백인대장이라고 불리긴 했지만, 실제로는 제1대대의 160명을 제외하면 80명의 병사를 통솔한다. 요즘으로 치면 중사겠지만, 그렇게 번역할 수는 없다. 로마군에서는 백인대장의 4분의 1은 비록 하사관이라도 군단장이나 사령관이 소집하는 작전회의에 참석할 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9권, 275p.




11월도 사흘 남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면 새해를 맞이합니다.


조금 빠른 감이 있을까요. 종교가 없는 일반인들도 부활절과 성탄절은 알고 있습니다. 부활절을 준비하는 40일이 사순절이며, 성탄을 맞이하는 그전 40일이 대림절입니다. 교회력으로는 이때부터 새해가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라틴어 ´아드벤투스 (Adventus)´에서 기원하며 그 뜻은 ´도래 (到來)´입니다. 그야말로 가고 ´옵니다. ´




한 번 골라보실래요. 11월을 부르는 인디언들의 말입니다.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강물이 어는 달, 작은 곰의 달,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사실 11월을 좋아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는 것이 사람을 차분하게 합니다. 들뜨지 않고 서두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나가고 들어오는 문이 없습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모르는 곳이 11월입니다. 그러면서 부족하지 않습니다. 갈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한 번 들을 수 있는 달입니다. 구르몽의 말처럼, 영혼이 우는소리 말입니다.




¶ 시몬, 너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 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레미 드 구르몽 Remy de Gourmont, 낙엽






앞으로 사흘은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을 것입니다. 바람이 적당히 차가워졌고 금강에는 바람이 가득할 것입니다. 떠난 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내 영혼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리고 덜 부끄러워할 겁니다. 나를 잊은 나를 지키고 섰다가 겉옷이라도 하나 걸쳐줄까 합니다. 생각나는 것들을 옮겨 싣습니다. 저 강물은 어디로 가는 낙엽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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