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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01. 2022

기도 61-1

모래의 여자

2022, 1201, 목요일


부족한 나를 돕습니다. 문장이 나를 돕습니다.


나를 모래 위에서 꺼내놓습니다. 거기 묻히지 않도록 사다리가 되어줍니다. 올해는 이렇게 마무리가 될 것 같다며, 책 몇 권을 가져와 옆에 쌓았습니다. 거기에 『모래의 여자』가 있었습니다. 69페이지 첫 줄까지 읽고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내 주의는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모래´


미끌미끌한 아베 코보*의 문장들이 까끌까끌한 모래 알갱이들을 닦고 있었습니다. 조갯살이 진주를 품는 것처럼 숨 막히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런 솜씨가 있구나, 세상에나!




¶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뒤덮고 멸망시킨다.....


유동하는 모래의 이미지는 그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충격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일 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이 얼마나 신선한가.


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19p.




나는 상상합니다.


그 상상은 높은 가능성을 간직한 채 표적을 향해 날아갑니다.


그는 오래된 세월을 만졌습니다. 그날 바닷가에서 그가 한 일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바람이 불고 사람은 없고 모래는 끝이 없었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만지고 놀았지만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부드러웠는지 매혹적이었는지 말을 나눴었는지 아무 말도 없었던 것인지 감촉도 남지 않아서 하루가 거짓말 같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어서 망설였습니다. 모래는 거기 그렇게 많이 쌓여 있었는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어제 그 모래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은 무수히 많았지만 정작 보고 싶은 날은 거기 없었습니다. 막막해졌습니다.




그날 늦게 ´집을 모래 위에 지은´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말이 창에 비쳤습니다. 하늘은 어둡고 집 앞으로 가로등이 하나, 더 떨어진 골목길에 둘, 그리고 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안과 밖을 동시에 가리키는 커다란 유리창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이 어둠 속에서 파도에 잠겼습니다.




잠시 분위기를 잡아봤습니다.


그러니까 아베 코보의 소설은 - 이렇게밖에 설명을 못하겠는데 - 귀기 鬼氣가 서려있었습니다. 어떤 것이든 기운이 넘치면 쏟아집니다. 물론 절정에 이르고서도 장력 張力을 발휘하는 고수들도 있습니다. 어설픈 감상이지만, 그의 문장에 어떤 탄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외침 같기도 하고 연주 같기도 합니다. 아직 더 감상해 보고 싶습니다. 그 말이 하고 싶은 것입니다. 12월에 만날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 아닐까 싶다는. 끝내는 운이 좋았다는 말이 답이 될 듯합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오늘 복음은 ´모래´가 뼈대였습니다. 아마 오늘 읽게 될 소설의 나머지가 술술 읽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맥이 상통하면 줄기차게 뻗어나가니까요. 감각과 감각이 서로를 알아보고 현을 울리면 거기에는 탄성이 탄생하기 마련입니다. 벌써 ´반석´ 위가 그려집니다. 그 위에는 무엇을 세워도 보기 좋을 것입니다. 이왕이면 ´빛´을 세워보고 싶습니다. 마티스가 그린 노란 점이 태양이 되듯 나도 그려보고 싶습니다.




날마다 나를 돕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도 그들을 도와야겠습니다. 살아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아무래도 소설 같습니다. 나는 소설이고 싶습니다.





*아베 코보 安部公房 ㅡ 본명은 아베 기미후사. 전후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로 심도 있는 실존주의적 작품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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