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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02. 2022

기도 62-1

눈이 안 와요

2022, 1202, 금요일



아이들이 볼멘소리를 합니다. 춥기만 하고 눈이 내리지 않는다며 시큰둥합니다. 나도 그랬을까, 그러고도 남았을 거 같은데 아이들 심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가르치려고 합니다. 눈이 내리면 길이 미끄럽고 차들도 사람도 그 위에서 얼마나 위험한지 죽 늘어놓습니다. 눈이 내려야 비로소 겨울이 왔다고 믿는 아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나를 통과하느라 애를 먹습니다. 누가 그것을 모르나, 그 한마디 돌려주고 싶은 것을 겨우 붙들고 있는 눈치입니다. 눈이 점점 흐려지면서 내 감흥도 그만큼 줄어든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눈 雪을 기다리는 눈 眼에 차이가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맨 먼저 눈을 내놓습니다. 발도 손도 얼굴도 다 기다렸는데 눈이 빠집니다. 가장 약한 것이 가장 애를 태우고 그 열을 견디지 못하고 내 몸에서 빠져버립니다. 눈이 발밑을 뒹굴어도 나는 볼 수 없습니다. 아끼고 아끼고 한 번 더 아껴 써도 모자라는 눈입니다. 그런 눈이 없으면 사람이 초조할 대로 초조해질 것입니다. 내 눈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 일, 그것이 인생이어야 합니다. 눈을 처음 본 아프리카나 더운 열대 사람들은 어떨까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 그 사람들을 꽉 채울 것입니다. 나는 눈을 많이 썼지만 누군가의 눈이 되어 준 적이 없습니다. 피로에 지칠 때도 됐습니다. 이 눈으로 감시하고 살았습니다. CCTV도 할 줄 아는 그 일을 하느라 다 써버렸습니다. 눈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감시가 아니라 ´감사´인 듯합니다. 고마워하던 눈이 그립습니다. 반가워하던 눈, 기뻐하던 눈, 슬퍼하던 눈, 그런 눈이 내리지 않습니다. 눈을 기다리는 설렘을 철없다고 외면합니다. 사람들 눈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눈 뜨고 눈멀었습니다.




아주 예쁘게 눈이 먼 사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中




눈이 빠지고 눈이 멀어야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이 믿어집니다. 말없이도 약속이 됩니다. 혼자서도 기다릴 줄 압니다.


그런 눈이 보고 싶은 것입니다. 12월은 그 눈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하염없이 내내 다 지나가도록 여기에서 거기에서 그 중간쯤에서 내가 그를 맞습니다. 온통 맞습니다. 눈이 펑펑 내립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마태오 9:29




눈먼 사람 둘에게 눈이 내렸습니다. 그 눈으로 무엇을 보고자 합니까. 놀이터에 가서 같이 시소를 타고 싶습니다. 한쪽에 그를 앉히고 다른 쪽에 무엇을 앉혔으면 좋을까 묻겠습니다. 여기에 그 눈을 놓아보자, 눈 없었던 사람들이라 잘도 내어줍니다. 소중한 줄 알았을 텐데 그래서 내어줄 수 있나 봅니다. 이 눈만 한 것들이 무엇일까. 어떤 것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반대쪽에 다른 어떤 좋을 것을 아무리 ´쌓아도 그것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눈이 있고 나서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나로 살 수 있기를 나 또한 기도합니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삶을 기도합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태오 9:22




여인은 예수님의 뒤에서 가만 그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예수님께서 뒤돌아 보십니다. 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고통과 번민과 희망과 바람과 기도가 믿음으로 거기 서 있었습니다. 믿음을 바라보는 눈, 그 눈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나다*. 하나 더 구원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루카 23: 43




죄를 받아 죽어가는 그가 말합니다.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여기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나는 누구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가. 내 마지막을 죄인들이 지켜줄 것을 소원하는가. 끝없이 의심합니다. 회의하고 쓸쓸합니다. 그가 말합니다.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나는 말을 잊습니다. 눈도 멀고 말도 잃었습니다.


가루가 되어 하얗게 내리는 날까지 기다립니다. 나는 눈이 되기로 합니다.


구원의 노래는 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셰익스피어, 햄릿의 대사,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Frailty, thy name is woman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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