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물처럼 Dec 04. 2022

네게 이르는 말

졸업을 앞두고 1

곧 중학교 3년 과정이 마무리된다. 졸업이 한 달 남은 12월 첫 주다. 기말시험도 끝났다. 지금 기분은 어떨까.


산이는 볼링을 잘하는 것 같다며 자랑했다. 초등학교를 부지런히 다니던 아이가 어느새 중학교 3년을 다 마치고 고등학교에 다닐 차례가 됐다. 남의 집에서 자기는커녕 우리 집에서도 엄마하고 같이 잤던 아이가 이제는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는 전화를 한다. 공부하다가 심심해서 노래방에도 다녀왔다고 그러고 라면이며 계란부침 정도는 가볍게 요리해서 먹는다. 그리고 자정이 넘도록 게임도 한다.


너도 시간을 실감할까.


너한테 지난 3년은 어떤 모습으로 되감기가 될지 궁금하다. 과연 일기를 썼다면 나중에 얼마나 두고 웃을 것인가. 지나간 것들, 기억에 남은 것과 기억에서 사라진 것들 속을 헤엄치는 너를 한 번쯤 헹가래 쳐주고 싶다. 수고했다는 그런 말 말고 이유도 없이 문득 공중에 붕 띄워놓고 잠시 멈춰주고 싶다. 매 순간 앞으로 달려가느라 머리가 어지럽지 않던? 너는 그렇게 많은 순간들을 선택하며 잘도 웃는구나, 건강해서 좋구나. 그런 표현들을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려보면 어떨까. 나는 너를 응원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심했으면 하는데도 마음이 밀고 가는 나를 어쩌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보다 굵은 인연으로 매어져 있기 때문일까. 내 응원이 너를 힘내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네가 잘하기를 바라는 나는 또 구슬픈 피리 소리가 되었으면 한다. 시절이 앞으로 나를 원하는 대로 조각한다면 그런 음률이었으면 한다. 가슴이 초라해지는 풍경으로 너를 바라보기를, 내 응원은 그 밖에 더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 나는 잠시 후회한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너에게 쓰고자 하는 편지는 이것이었던가. 나는 어느 순간 길을 들어서고 말았구나. 그 길은 내가 생각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를 이끈다. 나는 너에게 일러주려고 했는데, 지금부터 석 달 동안 네가 준비했으면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서 그것을 실천하게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가 이 골목으로 들어섰나.



부족한 역사 공부는 같이 해볼까, 나도 잊은 것들이 많아 언제든 한번 정리를 해둬야 내 남은 날들을 헷갈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 거 같다고, 그 말 하려고 했었다. 어떻게 충주와 청주를 같다고 봤으며 전주와 진주를 겨우 구분하는 것이 자랑이 되겠냐. 땅과 사람을 배워두면 길에서 심심하지 않더라고 일러주고 싶었다. 과학은 EBS 교재로 인터넷 강의를 들어보는 것은 또 좋지 않겠냐며 꿀을 물에 녹이듯 살살 네 귀에 바를까 생각했었다. 더 좋은 자세로 고등학교에 가도록 내가 도로포장을 하려고 했다. 나는 그것을 꿈이라고 고백해야 하는지, 욕심이나 집착이란 죄목으로 형을 살아야 하는지, 꼭 갈림길에 서 있는 기분이다. 한문도 해놨으면 좋겠고, 제2 외국어도 지금쯤 하나 골라 연습해 두면 좋지 않을까 싶어 파도가 인다. 내 안의 불같은 파도, 물이 되지 못하는 염려가 철썩인다. 나는 초조한 뱃사공이며, 안달하는 옹기장이다. 너를 물이며 흙으로 만났으면서 나는 어디로 너를 건넬까 물을 가르고, 어떤 그릇을 구워낼까 불을 지핀다. 초라한 행색이다. 내 초라함으로 너를 입히지 않기를 늦가을 바람에도 잊지 않았던 날들을 잊을 수 없다. 부모라는 사람은 자식이라는 사람 앞에서 한껏 이기적이고 한껏 소심하다. 거울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 늘 부대낀다. 내 안에서 울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자꾸 떠들어 본다. 울음이 되지 못한 흐느낌이 그 속에서 다 익지 못한 채 찬 바람을 쐬고. 나는 나를 익히는 것이 너인 줄 알고 너를 익히는 것이 나인 줄을 모른다. 땔감을 구하지 못하고 내 옷에 불이 옮겨 붙는 줄 모르는 나는 태운다. 그 불에 익은 밥이며 떡이 사람을 도울까. 사람을 살찌울까. 차양 넓은 모자에 빛을 가리고 사는 일 같다. 보기에 좋을 뿐이다.



아, 나는 창피한 것도 있다. 대수롭지 않은 것을 갖고 - 이미 다 준비를 끝낸 사람들이나 벌써 거의 다 도착한 사람들, 든든한 성을 소유하고 그 위에 보강을 드는 성주 城主들에게 나는 돌을 갖다 바친다. 내 돌을 그들의 성루에 쌓는다. - 한 뼘 농사나 짓는가 싶은 땅으로 애써 밭갈이를 하고 풀을 뽑고 약을 치며 새를 쫓는다. 노심초사한다. 비루하지 않은 것이 비루해진다. 나는 자식을 어여쁘게 여기고 자식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그것도 내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창피하다. 흔들리는 것이 좋은 일인데 깜깜해지려고 한다. 보이지 않게 감추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네가 책을 보기로 마음먹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책을 읽고 뒤집혀라, 다 뒤집혀서 실컷 토악질 해댈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참는 일이 네 일이 되고 그 힘으로 너는 살아갈 것이다. 너무 멀리 이야기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만 멈추는 것이 너를 위해서 좋은 일인 듯싶다. 너는 너를 살아라. 나는 후회가 많다. 그러나 후회도 쌓으면 탑이 되더라. 그 탑 마저 쌓고 너를 초대하마. 그러니 재미지게 피어라. 꽃도 연기도 마음도 연애도 공부도 세상도, 모두 피어라.

작가의 이전글 기도 62-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