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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05. 2022

기도 63-1

마시지, 뭐

2022, 12, 05,  월요일



오늘은 좀 늦었습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홀가분한 것이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주말이 끝나가는 것을 바라볼 텐데, 저는 그 반대입니다. 안식일에 일하느라 마음이 바쁜 사람입니다. 2천 년 전의 계명에 나를 달아보면 아마 돌무더기에 쌓여 손이나마 겨우 보일까 싶습니다. 그때가 아니라 지금이어서 내가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삶이 달콤한 맛을 냅니다. 카라멜 마끼아또가 어느 날은 더 달달하게 보여 나도 한 잔 시켜볼까 싶은 것처럼 내 일상이 다르게 전개됩니다. 그때가 아니라 지금이어서, 로마 황제보다 복을 누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캔맥주를 하나 더 마셨던 것이 탈이었습니다. 주일 저녁 미사에 다녀왔고, 저녁도 먹었겠다, 옷도 갈아입고 슬슬 잠을 기다리는 여유는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떠들고 싶은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는 무아의 경지, 그 곁에서 마지막 손짓을 하고 있는 테라 TERRA. 대지의 여신에게 축복을! 12월은 축복이 많은 달, 한 잔 마시지, 그리고 ´뭐´라는 맺음말. 한 잔 마시지, 뭐.




아내라는 직업은 참 다양한 일을 소화해 냅니다. 요리사였다가 메이드였다가 직장인이었다가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까지, 자격증 없이 많은 직종들을 통섭하는 ´꾼´입니다. 내가 잠을 못 자면 같이 못 자는 것이 신통하기도 합니다. ´그러게´ 그러면서 그다음은 삼키고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러지 못하고 쏟아놓는 나는 그것이 제법 고난도의 기술이란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알아차리고 이것과 저것을 해석하는데 아내는 해석본 없이 현재를 살아갑니다. 가끔씩 그 상태로 ´하느님´을 이야기할 때 그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중에 어느 편을 들까, 어느 이야기가 더 귀에 들어올까. 편들지 않겠지만 점수를 매긴다면 아내 쪽에 더 포인트를 주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말에는 모순이 송골송골 맺히기 마련인데 나보다 아내가 훨씬 덜 말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길을 걷지만 아내는 사람들 사이를 걷습니다. 나는 조용한 속에서 시끄러운 것을 달래는데 아내는 시끄러운 속에서 조용한 것을 위로합니다. 내 주름이 무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마 그런 실력자가 나를 돕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잔느 에뷔테른의 초상을 그립니다. 그들의 스토리는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 잔느가 모딜리아니에게 묻습니다.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지요?"


그가 대답합니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리게 될 거야."




세월은 많은 작품에서 많은 작가들의 소재가 됩니다. 그 변이와 변화는 예측 불가능입니다. 심오하고 깊고 웅장하고 간드러지기까지 합니다. 살살 녹이는 바람에서 집채만 한 파도를 일으키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표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세월을 살아갑니다. 어느 때는 몸이 마음을 앞서서 방향을 잡고 또 다른 때는 마음이 몸을 끄집어 당겨서 끌려갈 때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서로의 역사가 되고 증인이 되면서 세월을 꾸며갑니다. 치장인 듯싶고 거짓인 듯하다가도 한숨과 긴장, 감탄으로 주물럭거립니다. 세월의 맛은 정말이지, 모두 다릅니다. 아내를 마음이라고 보면 나는 몸입니다. 내가 마음이 될 때 아내는 어느새 몸이 되어 저만큼 나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설프게나마 균형을 잡고 하루를 다른 하루로 이어가는 듯합니다. 내가 발이면 아내는 팔이 되어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내가 팔 노릇을 하고 싶어 하면 후딱 발이 되어 땅을 짚는 그 직업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나를 애처롭게 보더니, 결국 날갯죽지가 아프다며 토로합니다. 파스를 붙여야지, 나는 로맨틱하지 못해 그 정도 말만 일러줍니다. 다시 후딱 불을 켜고 파스를 찾아옵니다. 동광제약, 한방파스, 단단한 포장을 가위로 자르고 한 장만 바르라는 것을 두 장은 발라야 한다고 탁탁 쳐댔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그 어깨에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날개 있는 데라고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 거기, 날개 있는 데 그쪽에 붙여줘요.


여기?


어, 그쪽으로 한 장 붙이면 돼요.


그냥 두 장 붙여, 파스 어차피 잘 쓰지도 않는데.


탁탁!


고마워요.


근데, 왜 날개 있는 데라고 그래?


날개도 없으면서?


그니까요.... ㅋㅋ






새벽마다 내가 먼저 깹니다. 오늘은 내가 늦었습니다. 기운이 없었습니다.


날개가 혹시 있던가, 그 생각이 먼저 났습니다.


요리사가 되어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오늘 아침은 속을 달랠 듯합니다.


월요일이 좋습니다.


밖이 춥더라도 어디 살짝 다녀올까 싶습니다. 밥 먹은 기운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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