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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14. 2022

기도 71-1

부족해서, 없어서

2022, 1214, 수요일



생각해 보면 재미있지 않습니까. 어떤 이의 기도를 아침마다 듣습니다. 예전에는 성당이나 교회 종소리가 멀리 들리곤 했었는데 시대가 좋아지면서 사라진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좋으나 싫으나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분수처럼 쏟아지는 푸른 종소리´ 같은 말이 교과서에 나와도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분수´도 ´종소리´도 낯선 정서입니다. 함라산 이야기를 엊그제 했는데, 함라산과 함께 빼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1주일에 한 번, 바쁘면 2주일에 한 번, 서로의 동행이 되어 주는 300번 버스 기사 아저씨. 내가 우진이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 어제 아침에는 둘이 걸었습니다. 날씨가 쌀쌀하고 비가 온 뒤라서 인적이 끊긴 산길을 오르내리다가 ´삶은 계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맞습니다. 우진이 아빠가, ´그때는 왜 그렇게 다 맛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라며 시작을 했습니다. 맞장구를 치면서 걷는 걸음이 얼마나 맛있는지 잘 아실 겁니다. 그래그래그래! 서로 그 맛을 압니다. 그럴 때 말이 감각을 못 쫓아옵니다. 감각은 벌써 온몸을 휘감고 추억의 책장*을 여기저기 찾아가며 짓이 납니다. 그때 같이 먹었던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고, 더 먹고 싶은 것을 참았던 것도 생각납니다. 아, 어린 시절 불렀던 어린이 성가 한 대목이 저를 스치고 있습니다. ´먹고 싶어 죽겠는 걸 사 먹지 않~고´




´부족해서, 없어서´




발에 밟히는 것이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만은 아니었습니다. 결핍이 내는 맛을 우리는 그리워하며 걸었습니다. 우진이 아빠는 일본어 공부를 10년 넘게 하고 있습니다. 결핍이란 말을 듣자마자 ´缺乏, 케츠보우´ 속삭입니다. 나는 그의 이런 모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 더 묻습니다. ´모자라다´ ´부족하다´, 그의 입에서 ´토보시이´ 그러면서 웃습니다. 그 정도는 쉽다는 뜻입니다. 병 病에 가장 좋은 약 藥은 감동이란 것을 잊기 전에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병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삶에도 그럴 거 같습니다. 관계가 오래 지속될 것을 바란다면 우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감동´이 양념처럼 버무려져야 합니다. 은은한 맛, 풍미를 돋우는, 맛 가운데 있는 맛, ´게미´ 같은 맛은 사람을 낫게 만듭니다. 음식이 약이 되는 지경이 바로 거기 아닐까 합니다. 그를 만나면 감동 이 솟습니다.




이번에는 나에게 묻습니다. 눈싸움이 뭔 줄 아세요?


´니라멧코´




몸이 기억한다는 말은 아름답게 들립니다. 그리고 그 말을 저는 믿습니다. 수술 후 몸이 차가워졌습니다. 가끔 신기하기도 합니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 수녀님 손을 맞잡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손이 차다며 놀라십니다. 수영장에 간 지가 언제였나 싶습니다. 그런데 내 몸은 ´수영할 줄 알 것´을 믿습니다. 물에 들어가면 저절로 손과 발이 나를 끌어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이 여기로 연결됩니다. 우진이 아빠는 그 이야기를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 같으면 벌써 일본어 졸업했을 거라고.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며 푸념이 잦습니다. 언어는 도루묵 같습니다. 말짱 도루묵 할 때 그 도루묵 말입니다. ´도로´ 묵이라고 해라,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동해 바닷가의 그 생선 말입니다. 몸은 언어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부분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몸은 애써 기억해 주지 않는다고. 그것이 원망스러울 때가 ´봄´인 듯합니다. 그래서 아직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풀어집니다. 연한 '봄'.

옆에 사람이 있으면 하던 공부를 마저 하고 가던 길도 다시 갑니다. 언어의 묘미는 잊히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매일 쓰는 것이 물방울 같습니다. 바위에 떨어지는 그 한 방울 말입니다. 도중에 길을 잃은 듯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가 벌써 잊었습니다. 하지만 산에 있으면 어느 길이든 길이 됩니다. 두려운 것을 조금만 다스리면 배고픈 것을 살며시 만져주면 ´맛´이 탄생합니다.




´삶은 계란도 안 먹어요, 구운 계란이라도 돼야 먹지. ´


- 그러니까 우리가 정서를 아이들하고 나눌 수 없는 거야, 정서는 이야기인데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사이는 서로 다른 존재잖아. 아마 아이들은 없어서 맛있었던 맛을 영영 모를 거야. -


´그러게요´




그런데 이치가 여기에도 통해요, 중요한 말 할 때 우진이 아빠한테 존댓말로 꺼냅니다. ㅋㅋ




´믿음도 그래´


- 믿음도 풍요로워져서 층이 져요, 그런데 가난할수록 믿음의 맛이 동치미를 닮아가요. 겨울에 떠먹는 시원한 동치미 알지요?-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마르코 12:43




´가난´도 ´과부´도 낯선 정서라며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해야 할 때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경험을 해야만 알 수 있다면 너무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봐야 믿을 수 있다는 말, 익숙한 말입니다. 과연 죽음을 경험하고서야 알아보시겠습니까. 그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믿음은 죽음을 믿습니다. 죽음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죽음만큼 어렵습니다. ´먹고 싶어 죽겠는 걸´ 견디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맛을 믿습니다. 아무 맛이 없는 맛, 그러나 맛 중에 맛, 하늘 같은 맛이 믿음입니다. 믿는 자가 행복하다는 것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어떤 이의 기도가 내 기도가 되며, 내 기도가 다른 이의 기도가 되고, 다른 이의 기도가 그 밖의 사람들의 기도와 만날 때, 평화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를 것을 믿습니다.




눈이 내린 날 아침에 띄웁니다.



*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ㅡ 가수 이선희가 1990년 8월에 발표한 노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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