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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Dec 15. 2022

기도 72-1

밝아졌다

2022,1215, 목요일



5학년 도환이가 가만 듣고 있다가 한마디 거들고 나섭니다.


´공부에는 완도가 없어. ´


재희는 그게 무슨 말인지, 처음 듣는 말 같습니다. 하지만 대충 감이 옵니다. 방금 내가 그랬으니까요.


´공부가 어려운 거야. ´


그러면서 그럽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알지? ´


도환이는 조금 우쭐한 표정이 됩니다. 풀던 문제를 마저 풉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성가실 때는 그보다 성가신 존재가 없다가도 귀여울 때는 또 저절로 문이 열리는 것처럼 마음에 들어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상황 자체에 대한 인식은 하더라도 그 상황에 놓인 자기 자신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거울에 투영해 보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어서 자기 모습을 살필 줄 모릅니다. 말하자면 자기를 객관화시키는 힘이 약합니다. 당연한 것인데 그 점이 적응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살아온 날 만큼 그 부분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의식해서 오히려 탈이 날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바라볼 줄 아는 작업은 우리 몸의 필수 영양소 같은 것입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이나 무기질 같은 영양소는 사람을 살리는 데 꼭 필요합니다. 골고루, 그리고 적당히. 이 두 가지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피해가 심해서 몸이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골고루´ 어른들은 ´적당히´, 그 사이 어느 지점에 바람이 잔잔한 곳이 있습니다. 불편하지 않는 곳을 찾아 사람들은 항상 이동을 해왔습니다. 정서적 안정을 위해 얼마든지 ´심리상의 발견´을 감행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21세기는 내 안에 엘도라도를 찾아 나서는 시대? 거창한 감이 있긴 하지만 ´마음´이 사람들의 화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엄살이나 과장은 아닐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살짝 핸드폰에서 ´왕도´를 찾아 꺼냈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할까 말까, 3초나 고민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아이들 시선을 그러모았습니다.




왕도 : 王道 명사, 1. 임금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2. 인덕(仁德)을 근본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


3. 어떤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한 쉬운 방법.




아이들 눈이 3mm씩 커지고 밝기는 3 cd* 환해졌습니다. 이런 말 덧붙이면 마음까지 좋아지는 것을 압니다.




´완도는 남쪽에 있는 가볼 만한 곳이지, 거기에서 배를 타고 더 남쪽으로 가면 ´청산도´라고 내가 좋아하는 섬이 있다. ´




그렇게 말하면 ´왕도´를 알아챈 아이들이 섬까지 따라가려고 합니다. 가는 길에 도환이가 그럽니다.


"´왕도´였어, 나는 ´완도´인 줄 알았네", 이 아이의 장점은 이런 것입니다. 고쳐 쓰겠다는 의지, 그것이 충만합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다시 글자를 훑어봅니다. 왜 왕도가 됐을까. 어쩌다가 임금의 길이 쉬운 방법이란 뜻을 업게 되었을까. 임금이 가는 길은 잘 닦아 놓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루카 7:27




세상 모든 사람이 왕입니다. 나는 너의 왕이 아니라 나의 왕입니다. 나는 내가 다른 누구의 왕이 아니라 나의 왕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를 위해서 길을 닦고 싶습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사막에도 길을 놓아야겠습니다. 바다에도 공중에도 길이 닿기를 바라겠습니다. 내 안의 왕, 그는 나를 인도하고 나를 위해 헌신합니다. 그것이 왕도입니다. 내가 나를 돕는 일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삶을 위한 레시피의 비법이 파피루스에 적혀 있습니다. ´나는 나로 살 수 있겠습니까´ 질문이 답이 되는 말들이 ´왕도´입니다. 몇 천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도 그것이 궁금했던 듯합니다. 자기로 사는 일, 왕으로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에게 충실하기가, 골고루 그리고 적당히 잘하면서 살기가....




* 밝기의 정도를 나타내는 기본 단위는 칸델라(cd)입니다.


일반적으로 양초 하나의 밝기가 1cd가 됩니다. 칸델라는 ´빛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Cadela에서 유래했습니다. 양초가 Candle인 것이 그냥은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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