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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09. 2023

기도 89-1

불안

20230109, 월요일



이번에 고 3에 올라가는 학생에게 그랬습니다.




"누구야, 너는 불안해야 움직이는 타입이라서 그게 걱정이다.


오히려 여유로우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




"초조해지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사람이 그때 아니면 움직이지 않아.


불안과 초조에 기대어 사는 사람 같다고 할까?"




그런데,




진짜 불안해지라고 했습니다. 진짜 불안하면 평소에 잘 지내려고 애씁니다. 가짜니까, 가짜라서 그때만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듭니다. 그때라도 하니까 그게 어디냐고 하소연하면 따로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불안을 밖에서 가져다 쓰지 말고 그래서 거기 휩싸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갈팡질팡하게 되니까, 우울해지니까, 불안이 필요하면 자기 힘으로 만들어 쓰면 좋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평화와 안정이 좋지, 왜 불안을 만들려고 하느냐 그러면 불안하지 않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나는 불안해서 기도합니다.


나는 불안해서 책을 읽습니다.


나는 불안해서 걷습니다.


나는 불안해서 하늘을 우러러봅니다.


아이들 일기를 쓰는 것도 내가 불안한 탓입니다. 나 없이도 잘 살았으면 싶어서, 덜 쓸쓸하라고 당부하느라 그러는 것입니다. 부질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내가 나를 달래는 일입니다. 다만 오늘 하루를 잘 지내자는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계속 오늘을 쌓아 놓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쌓은 것들은 모두 불안을 입고 불안을 먹고 불안 위에서 잠을 자던 불안들입니다. 하루도 그러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하루도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대신 나는 내 불안을 아끼면서 지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떠미는 그런 불안이 아니라 내가 직접 키운 불안을 안고 살겠습니다. 그것은 내 신앙이 되고 의지가 되며 그대로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안을 건네고 평화를 구하겠습니다. 내 불안은 부끄럽지 않았으면 합니다. 뜨겁지 않고 차갑지 않은 온유한 불안을 꿈꿉니다.


버찌씨 몇 알을 주고 사탕을 사 먹던* 아이가 나였기를 바랍니다. 그 아이의 손에 사탕을 쥐여주는 위그든 씨가 나였기를 원합니다. 아내가 도대체 30달러어치나 되는 물고기를 왜 소녀에게 주었냐고 물으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그가 나이기를 또 소원합니다. 내가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내가 그렇게 살 것 같은 불안, 모두 내가 가꾸고 싶은 꽃밭에 자라는 꽃들입니다. 꽃들에게 희망을, 내가 쓴 이야기이며 내가 쓸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렇게 불안하고 싶습니다.




*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본 ´이해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단편, 폴 빌라드 作으로 ´위그든 씨의 사탕 가게´라고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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