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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10. 2023

기도 113-1

긴 시를 적었습니다

2023, 0210, 금요일


혼자서 지내다 보면 벽에다 말을 걸 때가 있습니다. 사람 목소리가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라디오나 TV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살갗이 만져지는 소리, 뱃전을 때리는 물살의 힘이 느껴지는 소리, 바람이 낙엽 위를 거니는 한가로움, 밤이 새벽을 만나서 우는 울음, 입안에 든 팥이 촐싹거리며 바람을 일으키는 심심한 오후도 있습니다. 살살, 세상을 챙기는 것들의 그 가볍고 낭랑하고 호들갑스러운 전주곡들, 사람이 내는 소리들을 벽에 하나씩 저장해 둡니다. 내 눈으로 거기 버튼을 깊게 누르고 플레이, 벽이 들려주는 사람들을 듣다가 듣다가 까무룩 잠든 날이 있었습니다. 별처럼 반짝이며 누가 나머지를 다 들었는지 나는 모르는 날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소리를 저녁 먹고 잠들기 전까지 지워봤습니다. 저 소리가 없다면 어디만큼 우울할까 그래프를 그려보았습니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세요. ´


´토하면 안 되니까 30분 동안 드세요, 아셨죠? ´


´이번에 산 생선은 맛이 좋은 거 같아요. ´


´쌈장 맛있지요? ´




저 소리가 있었구나. 날마다 나에게 있었구나. 소리를 지웠더니 소리가 났습니다. 지극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착한 것도 알겠고 계속 이러고 살았던 것인가, 싶었습니다.




´운동 다녀올게요´


´그냥 놔두세요, 설거지는 갔다 와서 내가 할게요. ´




존댓말이 능숙해지고 있구나. 유창해졌다. 이제 원어민처럼 말을 하는구나. 전혀 어색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자기 의사를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같이 시작했는데 나는 어디에서 왜 멈췄을까. 존대도 그렇다고 흔연스럽지도 못하는 나는 외국말을 하듯 말을 건네고 말이 짧고 때로는 무정하다. 점점 살가워지는 사람은 아내인가, 나인가.




하루가 길었다. 나처럼 말 못 하는 학생들에게 나처럼 말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좋은 교본은 아니다. 하지만 이정표는 될 것이다. 내 쪽이 아니라 그쪽으로 가면 된다는 표시는 될 것이다. 아, 잠이 들었었다. 열두 시 삼십육 분, 아내의 소리를 지운다.




´역류가 일어났다고 해서 바로 달려갔거든요. ´


´김 과장이 지금까지 엄청 고생했어요. ´


´내일 바로 업자 불러야지, 결국 원인을 모르겠더라고요. ´


´어서 자요, 잠 깨면 안 되는데 ······. ´




할 말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줄 말에 손을 뻗지 못했다. 힘들었겠네,라는 말이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대신, 튀르키예, 거기에 기부를 했다고 전했다. 김단지 선생하고 또 한 군데 다른 데에서 모금하길래 했다고.




´잘했네요. 정말´




금방 어두워졌다. 깜깜해졌다. 나는 침묵하고 아내는 고요하다. 사람이 사람하고 함께 산다.


그거 아는가, 일생을 함께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행동을 함께했다고 말한다는 것을. 함께와 한다가 아무 간격 없이 딱 붙어서 산다는 것을 그는 알까.






긴 시를 적었습니다.

그런 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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