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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22. 2023

Somewhere over the rainbow

아빠가 쓰는


이 글을 쓰면 5,500번째 글이 완성된다.

어제 산이에게도 했던 말이다. 내가 안 해본 것에 대해서는 떠들 수 없지만 해본 것은 말할 수 있어서 좋다며, 매일 새벽 글을 써보니까 알게 된 것이 있다고 했다. 무엇이든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꼭 있다고, 하지만 거기를 넘어갈 줄 알아야 내가 좋아지더라고, 물론 산이에게 그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사실은 늘 어렵다고, 좋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의 결과물이 아니더라고, 그것은 동전의 양면 같더라고, 힘들고 좋아지는 것이 함께 붙어서 굴러가더라고.

네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일들이 어떻게 헛될 수 있겠느냐고 믿는다. 너는 즐겁게 글자를 배웠으며 숫자를 갖고 놀았던 너를 엄마와 아빠는 잊지 못한다. 어린 왕자 책 표지에 네가 써놓은 내 이름을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흐뭇한지 너는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너는 학교에 들어갔고 뛰어다녔고 즐거워했다. 모든 날들이 좋았다고 아빠도 고백한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가벼웠다고 고백한다. 네가 자라는 것이 신기했으며 고마웠으며 용기가 됐고 힘이 됐다고 고백한다.

너는 무엇을 기억하느냐. 우리가 어제 나눈 이야기는 하나의 다짐이며 각오였지 않았느냐. 이제 곧 너는 고등학생이 된다. 등교를 할 것이고 교실에 오래 앉아 있을 것이며 친구를 사귀고 공부를 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것들과 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무수한 선택을 하면서 시간의 양안을 오갈 것이다. 가끔은 단조로운 리듬이나 소리에 너를 맡겨보아도 좋다는 이야기를 어제 빼먹었구나. 나는 왜 중요한 것들만 이야기하려고 했을까.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많지 않을 텐데 말이다. 너는 그 노래를 부르며 지냈으면 좋겠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기타 소리 흥겹게 노래 불렀으면 한다. 그런 말을 대신해 줄 것을 그랬다. 아빠와 엄마가 금방 나이 먹고 늙으니까 너희가 자기 할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쯤은 생략할 줄 알았어야 했는데, 중요한 순간에 아빠는 유머가 부족했다. 너그럽지 못했다. 그 노래가 듣기 좋은 해변에 가는 꿈을 오늘부터 갖기로 했다. 아빠는 그 꿈을 가꿔보기로 한다. over the rainbow, what a wonderful world 두 개의 멋진 노래가 동시에 불리는 접속곡, 나는 그 꿈을 꾼다. 네가 스무 살이 되면, 아빠는 이 일기를 정리하고 싶다. 네가 태어나서 5634일째 되는 오늘도 그 일기에 함께 엮일 것이다. 그 일기를 너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스무 살을 축하하며 그날 우리는 다시 첫날을 맞이할 것이다.

너를 응원한다. 아빠와 엄마는 그늘이 될 것이며 볕이 될 마음이다. 때로는 별이 되기도 하고 구름이나 비가 되고 눈으로 내려도 좋다. 숲을 원하면 숲이, 바람이 좋을 것 같으면 바람이 되어 볼 것이다. 세상이 파도치는 바다라면 우리는 거룩한 배가 되어 너를 태울 테니 너는 폭풍을 건너라, 용기를 가지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라. 늘 하느님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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