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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23. 2023

기도 122-1

양가감정

2023, 0223,  목요일



길었던 겨울 방학도 일주일가량 남았습니다. 학생들이 양가감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학년을 불문하고 불안과 설렘이 한 데 섞인 표정으로 떠듭니다. 노는 애들 있대 - 나는 몰래 웃습니다. 저희들도 ´노는 애´는 무서운가 봅니다. - 머리 단속이 심하대, 엄청 늦게 끝난대, 급식이 형편없다느니 매점이 있나 없나도 푸념 거리가 됩니다. 시원섭섭하다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양가감정이란 교육학이나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감정인 듯합니다. 두 가지 서로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여서, 자칫 정서적으로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가능성´이란 말에 순순히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하는 편입니다. 모든 가능성에 수긍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선이나 악이 될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다고 받아들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절대´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나는 ´절대´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모순이 제 정체성입니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며 우는 사람만큼 슬픈 이도 없을 것입니다.




이건 우리끼리 비밀입니다. 한번 판단해 주셨으면 합니다.




¶ 여자아이 A는 밝고 쾌활합니다. 인기가 좋습니다. 키도 크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남자아이 B는 차분한 성격입니다. 그렇다고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태권도 학원에도 빠지지 않고 다니며 다른 공부도 뒤처지지 않습니다. 6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남자아이가 용기를 냅니다. 여자아이에게 사귀고 싶다고 말합니다. 여자아이는 선뜻 그 고백을 받아줬습니다. 그리고 300일이 지났습니다. 100일마다 기념일을 챙기는 스토리를 저도 같이 들었습니다. 신선하기도 했으며 대견한 것도 같았습니다. 두 아이가 의젓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위험하지 않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았습니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깨졌다´고 합니다. ´내가 찼다´고 여자아이가 말했습니다. 남자아이가 왜 그러냐며 다시 잘해보고 싶다고 했지만 여자아이는 그만 사귀자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내심 남자아이가 안됐다 싶었습니다. 그 만한 심성도 드물 거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문제입니다.




서로 연락을 차단한 상태에서 남자아이가 SNS에 올린 문장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문장에는 증오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에게 그 화면을 보여주며 여자아이가 던진 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선생님 ㅇㅇ이 그런 아이 아니었잖아요."




저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헤어질 결심을 하나씩 짓고 있습니다. 죄도 짓는다고 하고 글도 짓는다고 하고 밥도 짓고 집도 짓는다고 하는데, 무엇인가 내가 지금 짓고 있는 것들은 허물어지는 것들입니다. 이것도 넓게 보면 양가적입니다. 저는 허물어지는 것을 짓고 있습니다. 바르게 짓고 싶다는 소망이 하나씩 생겨납니다. 내 나이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다른 어느 때보다 느낄 수 있습니다. 스물에 저는 뻣뻣했습니다. 서른에 저는 마르지 않았습니다. 마흔에도 질겼습니다. 그것이 사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잘 헤어질 줄도 몰랐고, 그것이 억울했으며 슬프기만 했습니다. 아름답다는 생각은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억지 눈물이었으며 고집스러웠고 그거야말로 무리수였습니다. 하지만 젊음이 늙음을 미리 가서 배우고 올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남자아이를 걱정합니다. 그 아이는 옛날에 본 것도 같고 앞으로 많이 마주칠 것도 같습니다. 누구의 잘못인가 따지는 일은 오히려 쉽습니다. 비난하고 나무라는 일도 많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출렁거리니까요. 어떤 것이 내 균형을 깨뜨릴 때, 그때 아픈 거라고 아주 먼 옛날 히포크라테스라가 말했습니다. 나는 흔들립니다. 계속 흔들릴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안식을 찾아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잘 흔들리고 싶습니다. 흔들리는 동안에는 흔들지 않도록 흔들릴 것입니다.



* 2023년에 02월 23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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