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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Feb 24. 2023

기도 123-1

어려움을 겪고서도

2023, 0224, 금요일


생이지지자 상야 生而知之者 上也


학이지지자 차야 學而知之者 次也


곤이학지 우기차야 困而學之 又基次也


곤이불학 민사위하의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다음이며, 어려움을 겪은 후에 배우려는 사람은 또 그다음이고, 어려움을 겪고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 가장 아래다."




논어에 나오는 말입니다.




가끔 수업 중에 무턱대고 한자를 써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일종의 잘난 체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러려니 하고 구경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한자를 많이 모르기 때문에 종종 틀리게 써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다시 고쳐 쓰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그렇게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서 늘 참고합니다. 내가 의식하는 그만큼이 나와 상대의 거리감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지금 상대를 의식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떠들 때와 다르게 ´혹시´ 그러면서 조심합니다. 현학적으로 보이지 않게, 나서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실수라도 하지 않게, 그러면서 제대로 썼는지 몇 번을 확인합니다. 겉치레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작도 못했는데 앞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심과 본심이 마주치는 지대를 여행하고 싶어 합니다. 거기에 가면 모든 것이 미풍입니다. 기분 좋아지는 산들바람입니다.




어제 학생들하고 나눴던 이야기의 한 대목을 덧붙였습니다. 그 아이들과 잠시 딴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러니까 16년 6월에 수술을 받고 21년 7월에 5년을 넘겼다. 일주일만 지나면 23년 3월이다. 20년 2월에 나를 찾아온 아이들이 3년을 다 보내고 고등학생이 된다. 어제는 마지막 듣기 평가를 했다. 우리는 그동안 매일 얼굴을 봐 온 사이다. 나한테 그만 싫증이 날 만도 할 텐데, 그런 내색도 없이 잘 다녀준 아이들이다. 이제 평일 수업은 졸업한 셈이다. 3월부터는 주말에 공부하는 것이다. 같이 밥 먹기로 했다. 시간이 아니라 세월이 가는 것을 느낀다. 시간은 자세하지만 계산은 철저하고 그 냉정함이 이를 데 없다. 과연 세월만큼 무심한 것이 있을까 싶어도 훗날 등 두드리며 위로하는 것은 늘 세월이었다. 세월을 닮은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까닭이다.




내 세월을 함께해 준 아이들이다. 고마운 생각이 든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망설이던 지점에서 만난 귀인들이다. 내게 길을 일러주고 힘을 내게 하고 웃음을 줬다. 처음 1년은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말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말에는 힘이 들어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기운이란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기운의 기운, 기운의 색깔과 질감은 소리에 묻어난다. 통화도 하기 싫었던 날들이었다. 영어 학원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나. 내가 아프다고 누가 내 사정을 알아주겠나. 그렇게 하던 일도 그만두고 겨우 가르치던 아이들도 다 떠나보냈다. 결정적인 장면이 하나 기억난다. 수술을 받고 집에 내려와서 기말시험을 앞두고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미안해서 수업하러 나갔던 날, 나는 그게 가능한 것이 신기했다.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삼았다. 다들 놀라는 소리로 나무랐다. 역시 다음날에는 몸을 움직이기 어려웠다. 그날 혼자 누워서 생각했다. 못하겠구나...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몸무게가 줄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운동 없이, 약물의 도움 없이 그대로 20kg이 사라졌다. 80이었던 몸무게가 60이 되었다. 이상한 기분, 낯선 분위기, 먹는 일과 자는 일, 화장실 가는 일이 모두 불편했다. 가진 것을 잃는 데는 순식간이지만 그것을 회복하는 데는 언제나 오래 걸린다. 그리고 결코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have been, has been, 그랬던 적을 회상하는 일들이 많아진다. 사실 그다지 좋았던 적도 없었으면서 사람은 막연하게 너그러워진다. 세월이 가진 힘이다. 지나온 시절을 아슬아슬하게 또는 다행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면 현실이 고마워진다. 두 발짝, 세 발짝씩 걷고 멈췄다가 신발을 끌면서 저기 보이는 데까지 다녀오던 아침을 만들었다. 그래도 좋았다. 새롭게 맞이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었다. 나는 거기 오르막에서 내려다보던 풍경을 기도처럼 간직한다.




어제도 강이가 물었다. 그때 자기가 몇 살이었냐며, 너는 7살이었지. 그러니까····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7살 아이를 두고 떠난 사람들을 알고 있어서, 그만 말을 삼켰다.




일기가 이렇게 길면 반칙이다. 자고 일어날 때 반갑다. 자리에 앉을 때 기분 좋고 일기를 쓰고 나면 편하다.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란 말이 스스럼없어서 좋다.






점점 날이 풀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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