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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니

某也日記

by 강물처럼


수업을 마치고 오후 3시, 대기에 가을 기운이 느껴졌다. 볕이 뜨겁지 않고 눈부시지 않아서 좋았다. 길 입구에 억새풀이 보였다. 휴대폰으로 야구 방송을 켰다. 오늘은 4연전 마지막 경기다. 계속 이겼으면 싶은 것이 어느새 승부에 빠진 사람 같다. 실책 같은 것은 못 봐줄 것 같다. 그러니까, 밖에 잘 나온 셈이다. 집에서 이런 아슬아슬한 승부를 지켜보면서 사람이 덩달아 달아오르거나 가라앉으면 그 뒷감당은 또 어쩌나. 물이 가득 찬 호수에 하늘이 비친다. 연 이파리가 다 마르지 않고 한쪽 구석에 촘촘하게 볼 만했다. 누가 방울을 울리면서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마 새 우는소리가 아니었을까. 문익점 묘소가 있는 언덕으로 오르기 전 숲에서도 들려왔다. 저 소리가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닌 줄 그때 눈치챘다. 오솔길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이렇게 주의와 관심이 나눠진다. 사람 사는 일에서 사람이 나오지 않는 다른 것들로 시선이 옮겨간다. 승부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도 살짝 든다. 길이 다 와 가는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저물어 가는 하루를 바라보았다. 거기가 편안하고 좋다. 내 인생에도 그와 같이 사람이 평화로워지는 지점이 있었으면 한다. 있어도 못 보고 지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남은 커피를 아내와 둘이 나눠 마시고 먼저 일어난 노부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거기도 야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지 눈빛이 반가웠다. 오손도손 정담을 나누던 부부가 앞뒤로 걸어간 길이 고즈넉하게 보였다. 우리보다 10년은 더 들어 보이던데 저만하면 건강하고 잘 지내는 거지. 10년이 뭐냐며, 70은 되어 보인다고 아내가 거들었다. 그렇지, 저 나이에 여기를 걷는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거고 젊어서 큰 고생 없이 지냈다는 것이라며 우리끼리 추리도 했다. 서로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둘이서 저렇게 같이 다닐 정도면 젊어서도 잘 지냈겠지. 두 내외분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걸었다. 물론 사람 사는 일은 물속보다 더 알 수 없는 일이라 살아온 세월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제 그 순간만은 그분들 머리 위로 축복이 내린 것처럼 하늘이 곱게 보였다. 하늘뿐만 아니라 6시 10분이 되어가는 그 시간도 어쩐지 넉넉하고 포근했다. 한때는 금방 늙어버렸으면 했다. 하느님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흰머리로 나를 덮어주세요. 그렇게 기도했었다.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고 얼마나 다짐했던가.

9월이 정들어 간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바라본 들판에는 연두도 초록도 옅은 노란색도 바르게 펼쳐져 있었다. 저걸 저렇게 예쁘게 물들이는 이의 손끝에 머무는 것은 어떤 빛일까. 물가는 오르고 살림살이는 팍팍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많다. 코로나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우리는 퇴색되어 가고 있는 걸까, 어디로 가고 있나. 옆에서 아내가 무심히 졸고 있다. 라디오 볼륨을 두 칸 정도 줄이고 바람을 타고서 달렸다. 집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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