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월요일 저녁 무심코 목소리 하나가 생각났다. 그의 안부가 궁금했다. 여보세요, 건너편 목소리는 잠에 들었던 듯 조금 무거웠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었다. 뜻밖이었다. 이 시간에는 잠을 잘 자기 위해 일부러 산책하러 나가는 줄 알고 전화했는데...
부안 선생님은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그랬다. 길게 통화하기에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아침에 전주에 다녀왔다. 한방병원은 반갑다. 7년 전 여기에서 한 달이나 머물렀으니까. 502호실, 입구 바로 앞 침대. 흰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밝아서 눈만 가리고 오지 않는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었다. 금방 인기척을 느끼고 그가 알아본다.
디스크 4개가 터졌다고 그러더라고.
나는 그게 어떤 말인지 어떤 통증이며 어떤 불안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부실한 허리가 같이 욱신거리는 것 같아서 몇 번이나 침을 삼켰다. 너무 아프니까 죽었으면 하더라니까요. 내가 그럴 수는 없고 누가 그래주면 정말 고맙겠더라고.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이가 되었구나.
우리가 처음 알게 된 것도 여기 5층 저쪽 끝에 있는 병실이었는데, 그때 나는 오른쪽 끝, 선생님은 왼쪽 두 번째 침대, 6인실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이만큼 흘렀구나. 그동안 우리가 다녔던 길이 떠올랐다. 지리산에 철쭉 보러, 지리산 둘레길에 두 번, 영암 월출산을 3번이나 올랐구나. 어느 해는 완도에서 짠 내 나는 해풍을 물씬 들이마시면서 밤거리를 거닐었고 목포에서는 유달산에 올라 옛날이야기도 나눴다. 부안에 들르면 맛있는 밥집을 찾아서 저녁을 먹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마다 나한테 챙겨주던 산에서 나는 것들, 그 아름다웠던 것들을 잊을 수 없다. 끓여서 먹고 백숙해서 먹으라고 내주던 것들, 겨우내 내변산 깊은 골에서 칡을 캐내느라 흘렸던 땀은 얼마일까. 나는 그 칡즙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받아먹었다. 아, 그런 사람이 누워 있다.
월출산은 나한테도 특별하잖아. 그런 말을 하니까 사람이 괜스레 더 서러워졌다. 평생을 어디 구경하러 다닌 적 없이 산 사람이라며, 그저 산에 다니고 농사짓고 사느라 자기 몸 아픈 것도 다 챙기지 못했던 사람이, 월출산을 처음 오르던 날 소년처럼 좋아했다. 마치 소녀가 앞에 서 있는 양 저 웅숭깊은 옹달샘, 찬찬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을 보면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은 반쯤 반하기 마련, 그 두 가지 마음이면 얼마든 길을 따라 걸어도 좋겠다 싶었던 날이 생생하다. 심심했던 내 길에 꽃비처럼 달가웠던 웃음이며 말소리, 그림자여. 그는 정말.....
올해 10월 26일, 작년에 정해 놓은 그 날짜가 다가오는 9월 12일,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옆 침대 환자는 지난밤에 자리를 옮겼다고 그런다. 밤새 끙끙거리니까.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도 힘껏 해내고 있다는 말에 몸서리가 쳐졌다. 누가 돌볼 것인가. 나는 그것이 뾰족한 치통처럼 시큰거리던데 그는 올해도 가야지 그런다. 어딜 간다고 그러나. 못 간다. 허리가 아프면 기침에도 몸이 자지러지고 놀란다. 산 아래에서 기다린다는데 나는 그것도 보고 싶지 않다. 아, 쓸쓸한 산이여. 걸음이여.
비가 내린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다. 어제 일기를 쓰다 말고 함라산에 다녀왔다. 비가 더 내리면 아예 맞을 생각이었다. 서두르며 컴퓨터에 입력시키다가 어딘가에서 오류가 났다. 그래, 이 노트북도 아픈 지 꽤 됐는데 그때마다 모른 척했다. 벌써 오후, 점심을 먹고 난 선생님은 어떤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흐트러진 글자와 문장을 바로 세우고 일기를 마무리한다. 차라리 비가 내리니까 덜 어수선해서 낫다. 걷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그 말을 주거나 받으면서 하루 내내 내변산을 돌아봤던 지난 6월이 어쩌면 이렇게 오래된 옛날 같으냐. 겨우 백일이나 지났을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