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닦는 거 같아. 이렇게 걷고 있으면 온갖 감정이 피었다 지는 것을 느껴. 꽃은 바람을 믿고 땅을 의지하고 하늘에 기대며 산다. 어째서 옛날 옛날에도 순례였을까, 아라비아 사막에서 티베트의 거친 벼랑길에서 신들과 함께 걸었던 사람들에게 평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했던 페레그리니 Peregrini,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 고행자, 싯다르타여, 평화를 빕니다. 내가 아는 모든 이름을 닦는다. 하늘이 거기 앉을 수 있도록 맑고 밝게 닦는다. 내가 길을 닦고 길이 나를 닦는 일이 순례인 것을, 아픈 어머니에게 전하고 싶다. 어머니, 많이 늦었습니다.
금을 만드는 연금술은 세상에 없다. 길이야말로 연금술사다. 숲을 지나오면 생각은 하나로 가지런해지고 마음은 너그럽게 사출 된다.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뒤를 따라오는 식구들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 말을 못 하고 사는 사람이 외로운 사람이다. 둘레길이 다 끝나기 전에 숙제도 하나 해야겠다. 800리 길을 걸어온 사람이 그 한마디 못할까. '소중하다' 그 말을 번쩍 들어서 길에 사람이 다니게 해야겠다. 길이 내 해진 옷을 갈아입힌다. 나도 단풍들 수 있겠다. 그대의 단풍은 울긋불긋하고 내 것은 물빛이다, 잘 익은 가을빛이 쏟아지는 하늘이다. 거기 노란 꽃배가 떠다닌다. 저 배는 달 맞으러 강릉 가는 배, 사람들이 사공이 되었다가 뱃사람이 되었다가 뱃놀이를 즐겼다가, 한바탕 연금술을 펼쳐 보인다. 저마다 솜씨가 좋구나, 그렇게 소중해지면 살아가는 일이 긴 장대 끝에서 잠자리 두 날개로 황홀한 균형을 이룬다. 그렇게 너그러워지면 길이 사람을 낳는다. 10리마다 낳았던가, 고개마다 낳았던가. 열 번을 낳고 열 번 사람이 된다. 길이 시작하면서 태어난 이가 길이 끝나는 데에서 나를 얼싸안는다. 그대로 내가 된다. 그렇게 오늘이 좋은 날이 된다. 오늘 우리는 태어나는구나. 그래서 늘 오늘이구나.
잊지 않기로 한다. 돛대도 삿대도 없이 쪽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 사람을 위해 탑이 되었던 사람들,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는 사람들, 너른 등을 가진 사람들, 그들이 모두 반짝이는 연금술이다. 금쪽 같은 사람들이다.
쉬었으니까 가야지, 아마 길이 시작하는 데라서 힘들었던 거 같아, 옛날 버드나무가 많이 자랐다고 해서 버디재였다고 그런다. 버디재는 높이는 그만그만한데 경사가 졌다. 아직 채 풀리지 않은 몸이라 걸음을 내딛기 팍팍했다. 심장도 소리치지 않았을까. 아침부터 이거 무슨 일인가 싶었을 것이다. 사실 버디재를 버티재로 잘못 보고 은근히 걱정했었다. 오래 걸어야 하는 길은 기가 꺾이면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좋게 받아들인다. 처음에 힘들고 나니까 차라리 편하더라고 낮게 휘파람을 분다. 고갯마루는 내리막으로 자기를 완성한다. 내리막에서는 숨을 고른다. 밤이 되지 않는 낮이 없듯이 고요한 호흡이 되돌아오는 것을 가만히 맞이한다. 남은 15km 산길이 멀어 보이지 않고 그만그만하게 다가왔다.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기로 한다. 우리는 늘 '이렇게' 간다.
서당마을 안내소는 찾는 사람이 없어선지 문이 닫혀 있었다. 거기에서 지리산 마을 사진도 보고 라면도 먹고 맥주도 마신다는데 그 재미를 우리는 맛볼 수 없었다. 나그네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대들 동지들이여, 가만 기다려 보게. 내 기막힌 것을 하나 짊어지고 가고 있는 참이라고 지금은 말하지 않고 있으려네. 물소리 들리는 곳에서 산새소리 나지막한 곳에서 이 등짐을 풀고 그대들에게 보이리라. 맛을 보이리라. 그때까지 신고 辛苦.
마디가 드러난 손가락이 저 위를 가리키며 주름진 입가에서 허물어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십자 모양의 표지가 보이지 않아 방금 올라갔다 내려온 골목을 다시 쫓아 올랐을 때, 옥상에 오르던 할머니가 내 차림을 읽고 묻기 전에 손으로 일러줬다. 저기로, 저쪽으로, 내가 용케 들었던 말은 저수지 아래로 가지 말고, 였다. 저쪽으로 그 한마디도 고마운데 '아래'가 아니란다. 나그네를 돕는 마음은 어느 시절의 나그네였을까. 할머니의 가장 눈부셨던 날은 어느 장면에서 지나갔을까. 우계 저수지도 파랗고 하늘도 파래서 사진을 찍었다. 저수지 옆길에는 내다 버린 쓰레기도 쌓였던데 한 뼘쯤 지나서 돌아다본 풍경에는 가을 한낮이 우두커니 앉아 있다. 사진 속 그가 어쩐지 정이 간다. 꼬부랑 밭이며 논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꾸 돌아보았다. 서당 마을, 우계 저수지를 지나면 말 그대로 산골 마을이 나타난다. 산길에서 도로에 나와 높다란 커브를 돌면서 한참 오르면 정자가 하나 나온다. 강이야, 거기까지 오느라고 고생했다. 다들 강이에게 격려를 담은 시선을 보낸다. 엄마는 강이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다니고 있었다. 마을 회관 옆 담장에 그려진 벽화를 챙겨 볼 여유도 없었다. 아이들이 지치기 시작했다. 10km 남은 길에 고개가 두 개나 있었다. 그 고개 두 개가 그렇게 오래 올라야 하는 줄 알았더라면 계속 걸었을까. 하나씩 간식을 먹고 힘을 냈다. 마실 것은 충분히, 충분해야 한다. 아빠는 왜 걷자고 그럴까. 너희는 왜 묻지 않을까. 정자가 있어서 좋았다. 우리 좀 누웠다 가자.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