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하늘이 맑았다.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에 언제 다시 들러 저녁을 먹고 유황천에 몸을 씻고 아이들과 수다를 떨 수 있을까. 갓 스물에 강릉쯤에서 밥을 먹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었던 말이 벌써 서른 해 넘도록 나를 떠나지 않는다. 식당 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전라도에서 왔다고 하면 별로 안 반가워요. 잘해줘도 시큰둥하거든. 그날 이후로 나는 '맛없다'라는 말을 빼버렸다. 생니를 뽑듯이 뽑아버리고 돌아다녔다. 덕분에 못 먹는 밥은 없었다. 그리고 모든 밥이 이해가 됐다. 솜씨가 없는 집은 있어도 맛없는 집은 없었다. 터무니없이 돈을 받는 집은 있어도 맛없어서 못 먹는 집은 없었다. 어떤 때든지 절반만 기분 나쁘기로 했다. 돌아다니는 일은 수행이기도 하니까. 머리를 기르고 청바지 입고서 가는 곳 모르는 행인 3, 그렇게도 나이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맛없는' 맛을 잊은 까닭이다.
우리 아이들은 밖에 나오면 잘 먹는다. 이상하게 맛있는 집들뿐이다. 이러다 길에서 살찌겠다. 다음부터는 '별로'인 집을 찾아야겠다. ☆이 반짝인다.
그 집은 김밥을 정말 잘 말더라. 하동군 옥종면은 이른 아침 산책과 김밥으로 유명해져라. 차에 시동을 걸면서 주문을 외웠다. 삼화실 안내센터까지 24km, 30분. 가자!
내일이면 삼화실 마을 주차장에서 사진을 찍은 지 스무날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걱정한다. 왜 그 있잖아, 노랗고 조그맣고 까먹는 거, 그게 뭐더라는 물음이 종종 나에게서 나오면 한 목소리로 응시한다. 그래서 어떻게 먹고 사냐고. 그런데 스무날이나 지난 그날이 잘 떠오른다. 강이, 산이는 둘 다 하얀색 반팔 티셔츠를 속에 입었잖아. My Little Bunny, 토끼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가 잘 어울렸다, 강이야. 거기 삼거리에서 나중에 11코스를 걸으면 이쪽으로 나오겠구나 그러면서 넷이서 길안내 표지판을 가리켰다. 엄마는 새로 산 신발이 편하고 좋다며 좋아했고 산이는 후딱 배낭을 짊어지고 앞장을 섰다. 마침 주차장 입구에 세워져 있던 막대기를 발견하더니 땅을 땅땅 두들기고 그 나무 막대기를 스틱 삼아서 하루 종일 짚고 다녔다. 이렇게 다 지나면 막대기조차 고마워지고 궁금해지는구나. 어디 숲에서라도 숲이 되어가기를······. 길에 있으면 아마 젊어지려는 것 같다. 나를 이루는 작은 단위들은 모두 그것을 반기는가 봐. 눈동자가 망막이 시신경이 그것을 채우는 더 세밀하고 조밀한 것들이 모처럼 기운 나나 봐. 잘 읽히는 책장을 넘기는 기분이었다. '책' 한 권을 그렇게 시작했다. 멀리 가보고 싶은 날, 산골에서도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이정 마을을 가로질렀다. 그나저나 우리는 아무 각오도 없이 산을 3개나 넘는 그날을 시작했다는 거 아니냐.
오늘 새벽은 춥다. 그래도 춥다는 말은 너무한다 싶어 가을처럼 서늘하다고 적는다. 올해는 계절이 한 걸음씩 서두른 인상이다. 빠르다는 말이 서두른다는 말과 전혀 다른 것을 새로 배운 느낌이다. 봄에 찔레꽃이 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여름에 우리 동 아파트 건물이 비에 젖어 서 있는 것을 매일 아침 봐야만 했다. 벌써 가을이라는 말이 인사여야 할 텐데, 벌써 춥다. 커피가 좋긴 한데 열 시에서 열한 시 사이, 그 10분 사이에 마시고 싶어 하는 내 안에 내가 있어서 기다리기로 한다. 궁리하다가 누룽지를 두 조각만 넣고 숭늉을 냈다. 커피잔에서 고소한 내가 호로록 피어난다. 물도 웅숭깊어지는구나, 나는 이야기를 더 쓰고 싶어졌다. 자, 가자.
나는 왜 호칭이 어색할까. 아빠라고 써야 하는 대목에서도 머뭇거리는 것을 너희는 알까. 누가 선생님 그러면 목뒤에서 시큰한 바람이 쓱 지난다. 식당에서 사장님 그러면 괜히 더 기가 죽고. 그냥 '나는'이라고 계속 그러면서 살아도 되지? 돼지라고 쓸 뻔했다. 그러고 살면 돼지라고 그러는 것만 같다. 과연 나는 '무슨' 사람일까.
나는 지도가 좋다. 지도를 보고 있으면 완전히 심심하지 않아서 좋고 완전히 재미있지 않아서 편하다. 거기에 산이 있고 강이 있고 길이 있고 이름도 있잖아. 사람들은 땅을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땅은 따로 있는데 나는 땅 이름이 좋다. 조령, 승주, 해미, 진부, 물금, 공주, 표선, 이름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애월에만 한 달 머물렀던 젊은 날, 바다가 무섭더라. 정말 무서운 것은 바다가 아니라 외로운 것인 줄 그때 알았다. 사람이 외로움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나는 섬에 다녔다. 섬을 찾아다녔다. 세상에 없는 섬에도 파도가 치고 바람이 쌩쌩 불었다. 지리산이 얼마나 될까, 너희도 아직 정확히 모르지?
우리가 걷는 둘레길은 자그마치 274km가 된다. 조선시대처럼 이야기하면 800리 길이다. 내가 늘 말하잖아, 얼마 안 남았다고. 우리 많이 걸어왔다. 남원에서 함양으로 함양에서 산청으로 이제 하동을 둘러보고 있는 거야. 하동이 지나면 구례가 나올 것이다. 너희는 조금씩 아껴서 하나를 완성하고 있다. 그것이 아빠는 내내 고마울 것이다. 이틀 연속으로 걷고 나니까 식구들이 전부 일주일씩 아팠다. 몸살도 나고 감기도 걸리고 산이는 독감까지 걸려 고생이 심했다. 나머지 둘레길에서는 너희가 하자는 대로 하자. 나는 충분하니까, 배가 고프지 않아. 하여간 이 둘레길 여행이 끝나거든 아빠가 선물을 하나 하자. 책이 만들고 싶어졌다.
이정마을 지나면서 다리를 건너고 오르막이 떡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게 고갯길이었다. 그 오르막이 버드재로 가는 길이었다. 강이가 가장 힘들었다는 거기 말이다. 그 길에서만 우리는 몇 번을 쉬었다. 만만치 않을 거 같은 예감, 대축까지 잘 갈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의지가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동안 걸어온 것들, 부안 마실길이며 섬진강 길, 어디 하나 허투루 걸었던가. 살아온 것이 재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이가 묻더구나. 아빠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냐고. 강이야, 그 길에서 내가 그랬지, 멀리 섬진강 모래사장을 보이던 곳에서. 그러고 싶지 않다고. 아마 진짜 그런 기회가 온다고 해도 가만히 눈을 감을 것 같다. 흔들리겠지만 떨리기도 하겠지만 내 것은 더 없어도 된다고 사양하겠다. 잘못된 걸음들이 무수히 많았더라도 발이 아프고 발목이 좋지 않아서 양껏 못 걸었더라도 이만큼이 전부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번에는 웃으면서 그래보고 싶다. 걸어온 힘으로 걸어가는 것이 내 삶이기를 또 바랐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겉옷을 내게 맡기는 너희에게서 살풋한 풋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