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서 안방 천장, 장롱 위 벽지에 물기가 스미기 시작했다. 전부터 증상이 있었고 관리소에 연락도 해둔 상태였다. 관계자들이 직접 와서 보고 갔고 그 뒤로 3개월 가까이 지났다. 그리고 어제 공사가 진행되었다. 누수가 일어나는 범위가 넓지 않은 탓인지 오후 3시경에는 일이 마무리되었다. 아침 8시 반부터 누수 공사와 도배, 청소, 정리가 착착 진행된 덕분이다. 너저분했던 집안 분위기가 한층 차분해졌다. 산뜻하고 정갈해지면 사람 기분도 편안해진다. 깨끗해진 화장실이며 베란다는 올가을을 잘 지내라는 응원 선물 같았다. 산이 엄마가 더 좋아한다.
좀 피곤했다. 낮잠을 사람들 작업하는 틈바구니에서 살짝 자긴 했지만 어중간한 느낌이었다. 아침에 새차도 하고 계속 헌책들을 밖으로 날랐다. 볼 것 같아도 결국 못 보고 떠나는 책들, 그 사이사이에 적어 놓았던 내 메모를 보면서 얼마간 상념에 빠지기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 같은 말들, 다시 마주치지 못할 시절처럼 이제 떠나보내야 할 것 같았다. 나태한 내가 있었고 무책임한 내가 있었다. 글자를 반듯하게 쓰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했을 것을... 옛 시절과 공간, 그리고 얼굴들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 좋은 멤버를 갖고도 나는 잘 살지 못했구나.
가벼워지면서, 무엇인가는 사라지면서 사람을 남긴다. 뒤에 남은 나는 막걸리를 마시면서 좀 울적했다. 청승맞아 보일까 더 마시지는 않고 입도 다물었다. 세월은 자식을 단단하게 키우는 어미다. 나를 지키는 그녀의 숨이 어렴풋이 코끝에 닿는다. 가을밤, 귀뚜라미가 울었으면 싶은 밤이 하얗게 내리고 있었다. 멀리 웃는 얼굴이, 젊은 얼굴이 기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