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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12코스 -5

우리가 걸으면서 함께 나눈 이야기들

by 강물처럼



스무 살은 시가 쓰고 싶은 나이. 그 마음으로 편지도 쓴다. 생각을 말아요. 그리워 말아요.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나는 스무 살이 오래전에 지났고 산이와 강이는 스무 살이 되어 간다. 무엇을 도울까. 어떤 것을 마련해 놓고 그때를 맞이할까. 내가 쓰지 못한 시를 써보라고 부탁을 해볼까. 너희는 즐거운 편지*를 적어보라고 말해줄까.

친구들하고 있으면 김광석 노래를 부르다가도 혼자 산에 있으면 하얀 나비를 흥얼거린다.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김정호를 추억하는 내가 나는 좋다. 나비가 나를 알아본다. 나도 걸음을 멈추고 눈을 나비 날개에 고정시킨다. 서러워 말아요, 그래 준다.

고개에서 한참을 내려와 먹점 마을인가 싶은 곳에서 섬진강이 보였다. 섬진강은 어디에서든 알아볼 수 있다. 다 같은 산이라고 해도 중국의 산이 다르고 일본의 산과 한국의 산이 다르다. 신기하게도 강원도에 있는 산하고 전라도에 있는 산이 다르다. 물도 그런 것이 있다. 섬진강은 섬진강처럼 흐른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면 그때부터는 시간이 시가 된다. 아이들 사진을 하나씩 찍었다. 지금은 스무 살이 되어가는 길, 너희의 스무 살을 위하여.

그렇게 내려갈 줄 알았다. 더 힘들이지 않고 그 길로 쭉 내려가면 하동, 평사리 들판이 영화처럼 펼쳐질 줄 알았다. 스토리가 꼭 그럴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는 적당히 지쳤고 하루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러다가 발견한 위쪽으로 가라는 빨간 화살표라니! 저기 돌아가는 데까지만 오르막이겠지, 놀란 강이를 달래면서 후다닥 휴대폰을 열었다. 말해야 하나, 어떡할까. 먹점재라는 고개 하나가 더 있는데, 5km 정도는 더 가야 오늘 걷기로 했던 대축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곧장 내려가도 걸어야 하는 거리는 얼추 비슷할 거 같았다. 다만 고개 하나를 넘어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또 쉬자. 마음이 복잡할 때는 우선 잘 쉬기로 하자. 마침 아기자기한 정자 하나가 길가에 있었다. 짐은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졌다. 대신 발은 무거워졌다. 마음이 주도권을 넘겨받는 순간이다. 낙첨은 뽑히지 않았다는 말이고 낙점은 뽑혔다는 것이다. 나는 나고 너는 너가 된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 한 획이 결정적인 때가 있다.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노력하고 주의하고 살피고 애쓰고 또 두 손 모아 빈다. 다시 강이가 했던 말을 스무날이 지난 오늘 꺼내놓는다.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언제야?'

'내 스무 살은 어쩐지 서러웠지만 괜찮아, 그래도 잘 왔어, 돌아가고 싶지 않아.'

우리 넷은 일어섰다. 더 가벼워질 것이 없었는데 더 가벼워졌다. 왜냐하면 걷기로 했으니까. 이 길로 가기로 마음먹으니까, 하나의 획이 그어졌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우리가 걸어 들어간 그 순간을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에는 알 수 있으려나.

나는 늘 여기서부터가 된다. 여기서부터 잘 걷기로 한다. 그것을 길이라고 부른다.

엄마는 그 와중에 밤을 줍겠다고 그랬다냐!

강이는 정말이지,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진 딸아이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팠다. 몸살이 났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코를 훌쩍거렸다.

"나는 힘들어서 빨리 갈 생각밖에 없는데 엄마는 밤 줍는다고 그러는 거야. 전날에도 밤 실컷 주었으면서 그러잖아."

무척 힘들었던가 보다. 길에서도 그러더니 밥 먹으면서도 그러고 하루 아프고 난 뒤에도 따진다. 그 밤을 어제도 쪘다. 밤이 나 같이 속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좋다며 접시에 담아 놓는다. 나는 누구 편도 들지 못한다. 나도 그만 주었으면 싶었으니까, 그런데 밤은 내가 먹는다. 삶이 제멋대로인 것 같아도 묘하게 잘 굴러간다.

산길을 다니다 돌탑이 있으면 돌 하나씩 쌓고 갔던 모르는 이들을 떠올린다. 소원이란 말을 잊지는 않지만 정작 나는 소원이 없다. 사람들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어느 절이든 거기 가면 눈에 띄는 소원들을 천천히 둘러본다. 어떤 소원이든 그 앞에서 나도 합장한다. 부처님은 소원을 들어주고 나는 - 산길에서 봤던 - 이름 모르는 야생초가 그랬던 것처럼 나지막이 응시한다. 나그네의 걸음을 바라본다. 타박타박, 멀어지는 것들 위로 발소리가 앉아서 가는 것을 예쁘다고 한다.

대축 마을에는 감나무가 풍년이었다. 이런저런 상념에 고개를 하나 더 오르고 어느새 거기를 내려왔다. 무릎 아픈 것도 까무룩 잊었다. 나도 소원을 하나 적을까 하다가 깨어난 사람 같았다. 주위는 고요했고 악양의 너른 벌판이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산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들판은 넓어졌다. 평사리에 어머니도, 장모님도 이제 다시 오지 못한다. 오더라도 감흥이 없을 것이다. 저기 들판 가운데 부부 소나무가 보이는 데까지 욕심껏 걸었던 두 분 어머님이 고적한 가을을 보내고 계신다. 추억은 새로워지지 않고 원자가 되고 분자가 되어 간다. 사라지지 않는다.

12코스에 다 끝나간다. 그 동네 이름은 축지리였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사람을 끌어당겼다. 문암송(文巖松). 600년 소나무가 바위와 하나가 되어 살고 있었다. 따로 또 하나였다. 이번 둘레길에서 줄곧 머릿속에 맴돌던 주제는 저 모습 아니었을까. 나도 소원을 빌고 싶어졌다. 거기 바위와 소나무에 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내 소원은 무엇입니까. 그대의 소원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서로 알아본 것입니까.

도로에 내려와 택시를 기다렸다. 강 건너면 광양인데 거기 잘해줍니다. 그래요?

산이는 참게장에 밥을 두 공기 먹었다. 재첩국은 나만 좋아했고 강이는 많이 피곤해서 밥 먹을 기운도 없었다. 가장 수고한 아내도 밥이 맛있다고 좋아했다. 다음에는 여기에서부터, 그때도 여기 와서 밥 먹기로 했다.

고속도로에는 연휴를 보내고 돌아가는 차들이 많았다. 차 꼬리를 무는 붉은 빛들이 둘레길을 지키던 그 화살표를 떠올리게 한다. 천천히 가자, 집에 가자. 다들 잠이 들었다. 쉿, 달이 웃는다.



*김정호 노래 '하얀 나비'에서 가사

*황동규 시 '즐거운 편지'에서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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