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가을이 높아졌다. 여기에서 한층 더 높아지면 어떤 청색이 터질 것 같은 하늘이다.
농협 통장에는 512, 962원이 남았다. 방금 11월 1일 자 카드 대금을 선결제하느라 국민 은행 계좌에서 805,290원을 입금했다. 이번 달 내 통장에 더 들어올 돈은 없다. 잠시 계산을 하고 카드 대금을 먼저 갚았다. 그리고 48,048원이 남았다.
매주 월요일 산이에게 6만 원 용돈을 주고 있다. 강이는 1일과 15일에 3만 원씩 두 번 나눠준다. 산이는 그 돈으로 주로 저녁을 사 먹고 가끔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가며 스터디 카페에 다닌다. 물가가 비싸져서 저녁 한 끼를 해결하면서도 생각이 많이 들 것이다. 용돈을 풍족하게 주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 주는 편도 아닐 것이다. 돈을 아껴 쓸 줄 알기 바라면서 또 쪼들리지 않게 내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은 월요일. 아직 산이에게 용돈을 보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매달 50만 원을 보낸다. 빨리 내 통장에 있는 숫자들을 맞춰본다. 어머니한테는 매달 1일, 강이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농협에서 50만 원을 보내면 12,960원이 남고 그것을 48, 048원 더하면 61,008원이다. 산이에게 돈을 보내도 된다. 그렇지만 또 생각을 한다. 엊그제 토요일에 가톨릭 문우회에서 남해 문학 기행에 다녀왔다. 참가비는 5만 원. 참가 인원이 예상보다 적어서 겨우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버스 한 대를 다 누렸다. 빈 좌석만큼 돈이 더 들었을 것이다. 옆자리에 앉았던 선생님이 찬조금으로 5만 원을 더 냈다. 나도 그날 아침 10만 원을 은행에서 찾았는데 겨우 5만 원을 내고 자리를 지켰다. 토요일 밤길을 밟고 집에 돌아오면서 집 앞 마트에 들러 캔맥주 하나를 샀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리고 나는 맥주든 뭐든 알코올을 자주 마시면 안 되지만 아직 나들이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버스에서 다 마시지 못한 한 컵의 맥주가 아쉬웠던 것이다. 가게에서 1600원 맥주값을 만 원짜리로 지불했다. 그래, 지갑에 또 48,000원이 있다. 400원은 따로 놓아뒀다. 다시 셈을 한다. 이번에는 조금 여유롭다. 61,008에서 48,000 = 109,008. 이 글을 쓰고 나면 바로 산이에게 6만 원을 보내야겠다. 강이도 3만 원 줄 수 있다. 그러고도 19000원이 남는다.
어제저녁은 아내가 일하는 관리소 반장님 하고 함께 먹었다. 2주 전에 맹장 수술을 받고 혼자 지내고 계신 분이다. 그 자리에서 반장님이 했던 말로 오늘 계산을 끝내야겠다.
'부자 같아요.'
'소장님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같이 산에 다니는 것 보면 정말 부러워요.'
가만 듣고 있으니 미안했다.
'하와이도 아니고 기껏해야 지리산인데요...'
70 인생을 살아온 분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에 힘을 줬다.
'그게 아니에요, 그게 더 어려워요.'
내 통장이 오늘은 달라 보인다. 일부러 속을 다 보이고도 아직 맑은 것이 이런 거구나. 가을 하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