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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가벼움

오래 쓰는 육아일기

by 강물처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산이가 어떻게 지냈더라? 독감에 걸려서 학교며 학원을 가지 못했고, 겨우 수학여행에 동행해서 3박 4일 제주도에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감기에 걸렸던가? 한동안 코감기를 앓았던 거 같은데.... 강이도 여태 목이 아파서 고생하고 있는 중이라 두 아이에 대한 내 기억이 어딘가에서 섞인다.

애들 엄마를 아는 사람들은 산이가 공부를 잘할 거라고 지레 짐작한다고 그런다. 산이 엄마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요즘은 방어적으로 말을 한다고 그런다. 기대만큼 잘하지는 않고요... 나도 그 기분을 조금은 알 수 있다. 공부를 정확히 얼마쯤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인데 '부모'라서 셈이 두루뭉술하다. 부모라서 그런 면도 있고 아이 실력이 월등한 것도 아니어서 얼버무린다. 더 잘할 거라고 내가 나한테 은근슬쩍 넘어간다. 그러면서 이 순간을 지나는 것이 2023년 현재의 우리 집 풍속이다.

사람으로 살면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얼마나 피곤한 일이냐. 그렇다고 그게 다 나쁜 것도 아니다. 발전이란 것은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여정을 감히 걱정하는 나는 할아버지는 될 수 있을까. 자기 앞가림을 못하고 사는 것이 사람이 가진 귀염인 듯싶다. 그러니 초조해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을 하고서도 멀쩡히 딴 사람이 되어 젊은 듯, 어린 듯 놀고 있다. 불평불만이 많을수록 젊고 어린 축에 든다. 삶은 이러나저러나 계속 진행될 것이다.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도 분명 있다. 그래서 수레바퀴를 이겨냈다고 해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다른 수레바퀴가 굴러온다. 바퀴는 굴러오고 사마귀는 거기 있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삶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저 내가 모르는 데까지 굴러가는 것이 꼭 수레바퀴 같다.

어제도 엄마하고 싸웠는데 오늘도 싸웠다며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툴툴거렸다. 공부하기 싫다며 심술 사납게 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명을 멈추고 엄마는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를 꺼냈다. 가만두고 보는 것이 옆에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다지 좋지 않을 거 같아서 내가 끼어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라는 과정을 들려줬다. 나도 아이를 키워봤으니까 일부러 꾸며댈 필요도 없다.

'엄마는 나를 위해 가장 위험한 일, 가장 힘든 일, 가장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지켜서 자라게 하는 과정을 짧지만 인상적이게 펼쳐 보였다. 이야기를 하던 나도 '그런 엄마가' 하는 대목에서는 목이 잠겼다. 그리고 바라본 아이의 눈은 너무나 아무렇지 않았다. 내 말이 저기에 닿지 않았다. 아니다 다를까,

'나는 결혼은 해도 애는 낳지 말아야지.' 그러면서 삐죽거리던 입이 참 무심해 보였다.

고집을 부리는구나. 일부러 더 퉁명스럽게 보이려고 그러는구나. 맨 뒤에 붙은 '말아야지' 그러는 것이 의지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알 수 있었다. 네 생각이 아니라 그래서 '네가' 아니라 지금 급하게 만들어 붙인 '반항' 같은 거라고. 평소처럼 말한다면 '애는 낳지 않아야지' 그러는 것이 자연스럽거든. 너도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거야. 알면서 잘 안 되는 것이 속상한 거야. 나도 그러거든....

옛날에도 그랬다고 들었다. 어른들은 어느 시대든지 아이들이 못 미더웠다. 세상이 이래서야 쓰겠냐는 말이 입버릇처럼 따라다녔다. 나는 그런 말 하고 싶지 않은데 세상이 그렇게 보일 때가 많은 것이 나도 나이를 먹었다. 내가 걱정하는 아이가 걱정할 아이는 또 얼마나 나와 동떨어져 있을까 생각하면 - 옛날 말투로 - 모골이 송연하다. 자기 몫을 치르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 시대는 내가 견딜 수 있는 풍토를 가졌다. 나는 이 시대 사람이다. 다음 시대는 다음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처럼 단순한 것이 순리다. 지금과 다음을 구별할 줄만 알면 된다. 그 눈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산이를 걱정하기로 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산이를 믿기로 하면 끝까지 갈 것이다. 다 잃으면 본전이 생각나는 것이 사람이고 삶이다. 다 얻은 것 같았다가 다 잃었던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그리워할까. 무엇이 잊히지 않을지 나는 알 것 같다. 내가 지금 산이에게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것, 그것이다. 이 아무것도 아닌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영영 그리워서 가슴이 녹아날 것이다. 아이가 자고 있다는 것, 저 방에서 나와 한 지붕 아래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는 사실이 내내 부모를 아름답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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