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가 썼던 것 중에 생각나는 것 있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많지"
좌회전하는 차들을 봐가면서 우회전을 하려던 참이었다. 아침 8시 20분, 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한창 정신없다.
11월에도 우리는 이렇게 같이 학교에 가고 있다. 거리 양쪽으로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한창이다. 교차로에서 사방이 다 눈에 들어왔다. 하늘 파랗고 여기 가을, 음악이 흘렀다.
방금 듣지 못했던 말을 들었다.
'되게 좋다'
웃음이 나왔다. 채로 거르지 않고 통으로 쏟아지는 햇살 같은 웃음소리가 10초나 이어졌다. 거리에서도 들을 수 있게 차창을 열었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1분간이었다.
어디가 좋냐는 말은 묻고 싶지 않았다. 다른 때와 다르게 다시 한번 읽었다. 먼저 강이가 한 줄씩, 그 뒤를 내가 따라 읽었다.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을 하느라 옆에 앉은 강이는 등굣길이 부산했다. 아이들도 그룹을 지어 산다. 그룹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느라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관계가 틀어지고 사이가 멀어진다. 유치하고 비겁하고 욕심 같은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숨죽여 배운다. 사람이 사람 속에 사는 그 수고로움이 14살 가을 아이에게도 날마다 주어진다.
"강이야, 학교 가는 길에 시를 하나씩 외워"
뭐든지 자주 많이 하면 잘하잖아. 시를 외우다 보면 시도 쌓인다. 시가 쌓이면 마음이 시가 되는 거야. 잘 봐, 도로를 건너가는 사람들, 저기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 운전하는 사람들, 학교 선생님, 학생들 모두 작품이라고 그러잖아. 하느님이 지었다고. 그것이 마치 '책' 같잖아. 세상에 수많은 책들,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얼마나 다르냐. 시는, 시는 문장일 수도 있고 그 문장을 적는 자세일 수도 있고 시선이나 마음 같은 것이야. 너도 재미있는 이야기, 좋은 이야기가 되고 싶잖아.
강이가 처음 외운 시는 다 알다시피 윤동주의 서시였다. 내가 아는 대로 불러준 것이라 아이의 성향, 나이, 앞으로 어떻게 그 시들과 인연을 맺을지는 알 수 없다. 되도록 한 사람의 삶에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특별한 '섬'이 아닌가. 내 바다에 떠있는 섬, 그 바다는 섬을 위하고 섬은 바다를 위하는 동작이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던가. 강이가 바다가 될 때까지 내가 지키고 싶은 바다는 어느 계절을 담을까.
김춘수의 꽃을 외운 날은 출렁. 물결이 찰랑거렸기를. 하지만 그마저도 내 기도가 되지 않고 그저 풍경 끝에 달려 있는 하나의 바람 같기를.
안도현의 가을 엽서는, 가을이란 말도 엽서라는 말도 다시 배웠다면 나는 커피 한 잔 그윽하게 타서 베란다에 나가 시절을 만끽하겠다. 오래오래 강이가 시를 달고 살아가면 좋겠다. 그 아이의 몸에 시가 흐른다면 그래서 여기를 잘 보듬을 수 있다면.
"그래, 건널목을 건너던 나뭇잎, 그거 쓴 거 있었잖아, 어렸을 때"
"그다음에 뭐였는데?"
" 낙엽이 빨간불, 파란불 생각하면서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거였잖아."
강이, 저도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