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그릇

화엄사 가는 길

by 나리

겨울의 해는 늦다

어둑한 아침을 지나 기차는 움직인다

십이월 수요일의 객차 안은

따뜻하고 여유롭다

안개가 자욱한 산과 강을 지나

익숙한 이름의 역에 기차는 멈춘다

구례의 입구, 구례구

매번 지나쳐만 가던 역에

첫 발을 내딛는다

섬진강을 건너

나는

화엄사로 간다


몇 안 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거대한 석등과 힘들게 계단을 올라 만난 돌사자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구례구역을 지날 때마다 다시 그곳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겨울 드디어 아이와 화엄사에 다녀왔습니다.

기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내려 다시 차로 15분이 걸렸습니다.

살짝 안개가 드리운 지리산자락, 소나무와 동백나무가 어우러져 신비로우면서도 예스러운 분위기가 더욱 가득했습니다.

날이 흐리고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없어 더 고요한 넓은 경내를 찬찬히 걸으며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사사자 삼층석탑 앞에서는 내년에 고3이 되는 아이를 위해 사심 담은 소원도 빌어보았습니다.


어린 내가 그곳에서 본 것과 오늘 아이가 본 것은 같지만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넘어 우리가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음에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천년의 세월을 넘어 그곳에 화엄사가 있어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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