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코스트에서 2일 차인 오늘의 계획은 서퍼스파라다이스에 위치한 전망대 '스카이포인트'에 가서 골드코스트의 전경을 보며 조식뷔페를 즐기고 오후에 서핑강습을 받고 바닷가에서 해가 질 때까지 노는 것이었다. 하지만 날씨는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제발 그쳐라 그쳐라 했지만 어제 내린 비는 아침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일정수정이 불가피했다. 일단 전망대는 가지 않기로 하고 숙소에서 아이들 아침을 먹였다. 오래간만에 일정 없는 오전에 아이들은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산책 겸 오전 서핑 강습이 계획대로 진행되는지 살피러 나섰다. 강습장소 근처에 카페에 가서 플랫화이트와 에그베네딕트를 주문하고 비 오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따뜻한 플랫화이트가 더욱 좋았다.
"비가 오는데 어떻게 강습을 한다는 거야? 취소해야 하는 거 아냐?"
"어차피 물에 들어가면 다 젖는데 비가 온다고 안 할 것 같지 않은데. 저기 봐봐! 비 맞고 뛰는 사람도 있는데 뭐."
그랬다. 비가 오는데도 운동화까지 신고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외국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잘 안 쓴다더니 진짜였다. 축축하게 비를 맞으며 강습을 받으려니 왠지 귀찮아져서 괜히 애들 핑계를 대었다.
"애들 감기 걸릴까 봐 그러지. 지금 취소하면 환불도 안 되는 거지?"
"어, 안돼! 저기 저 사람 보드 들고 간다!"
취소를 원한 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강습은 아무렇지 않은 듯 진행되었다. 남편 말처럼 어차피 물에 들어가 젖으나 비에 젖으나 똑같다.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즐겨보자 맘먹었다.
이 순간을 위해 지난봄부터 준비해 놓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다른 사람들처럼 우산을 쓰지 않고 해변으로 나갔다. 스스로의 의지로 비를 맞아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애들처럼 물웅덩이도 막 들어가 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해방감까지 느껴졌다.
강사는 남자 2명이었는데 둘 다 키가 크고 유난히도 팔다리가 길었다. 영화에서 보면 서핑보드를 옆구리에 착 끼고 해변을 막 뛰던데 막상 보니 어마무시하게 컸다. 혼자서는 옮기지 못한다. 둘 씩 짝을 지어 양 쪽 옆구리에 하나씩 두 개를 동시에 옮겼다. 강사들의 길쭉한 체형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부드러운 모래 위에 동그랗게 보드를 펼치고 그 위에 앉아 설명을 들었다. 강사는 웃으며 해도 뜨겁지 않고 바람도 적당해 서핑하기에 딱 좋은 날이라고 했다. 미심쩍지만 뭐라 대꾸는 할 수 없다. 설명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적당히 주위 눈치를 보며 기본자세를 숙지했다. 드디어 보드를 이끌고 바다로 향했다. 바닷물을 예상과는 달리 차갑지 않았다. 물에 들어 가 놀기 딱 좋은 온도라 긴장이 조금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