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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Mar 22. 2020

카페인 그리고 불면

모든 관계에 미련이 없다는 게 썩 유쾌하고  좋은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정을 쏟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만큼. 적정선을 유지하며 마음을 다 열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거리 유지. 그래서 가끔 나는 스스로가 지독히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처음부터 마음에 맺히는 모든 단어들을 걸러내고 걸러내어 쓴맛만 남긴다. 불필요한 감정을 배제한 무미건조함이 전부다. 달콤함에 필요한 요소들은 소모품에 불과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굳이 내 손으로 선택하지 않는 옵션들. 그러다 가끔 일종의 무념의 상태에 빠지게 되면 길을 잘못 들어선다. 아주 커다란 감정의 판도라를 열어 그 속에 고립시키곤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느껴지는 시신경을 타고 흐르는 기분 나쁜 두근거림. 그것과 비슷한 모든 감정이 싫어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자 했다. 그렇게도 지독히도 경계했건만, 또다시 후폭풍이 거센 미련을 남기고 떠난다. 그 끝은 결국 온몸을 뒤덮는 공허함. 온기의 부재.

불면은 고뇌와 불안과의 끝없는 싸움이다. 암흑 속에서 형태 없이 굴러다니는 생각의 치열한 몸짓이다. 육체와 영혼의 분리다. 왁자지껄한 생각의 춤사위, 불완전을 탈피하고자 하는 격렬함. 고통을 부각하는 방법으로 슬픔을 위로한다. 그래서 지겹고 지난하다. 모든 건 일종의 혼미한 정신착란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마음의 착란. 꿈의 씁쓸한 단 맛이 난다.

어제 같기도 하고 오늘 같기도 한, 나와 나 사이의 공백. 그래서 언제나 나의 새벽은 길고, 아침이 오는 것은 어렵다. 불면, 긴 밤. 그 여백을 채우는 일이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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