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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15. 2019

Happy Halloween


오늘은 할로윈 데이야. 우린 매년 할로윈 데이 때면 온갖 치장을 하고 이태원 거리로 나섰지. 사람 많은 곳을 힘겨워하던 우리가 3년 전 처음 할로윈 데이를 즐기러 거리로 나왔을 때,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었잖아. 당황해하던 나의 손을 덥석 잡고 인파 속으로 들어가던 너의 뒷모습을 기억해. 본인도 분명 어색하고 떨렸을 텐데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아마 너는 내가 네 등 뒤로 느껴지던 그 떨림을 알아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겠지. 괜찮아. 그런 미세한 떨림마저 나에겐 든든함으로 느껴졌으니까.


그 후로 할로윈 데이는 일 년 중 단 하루, 우리가 세상에 온전히 섞이는 날이었어. 우리 둘만의 축제가 아니라 모두가 다 함께 행복해하는 축제였으니까. 밤이 깊은 줄 모르고 함께 미소를 나누고 온기를 나눴지. 왜인지 모르게 비밀스럽고 황홀한 밤이기도 했어. 그래서 우리에겐 더없이 특별히 기억되고 설레는 날이었지. 할로윈 데이가 다가올 때면 함께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분장을 할까 고민하는 순간마저 행복했으니까.




아기새가 어미새를 기다리듯 내 앞에 차분히 앉아 기다리던 너를 기억해. 분장을 해준다며 앉혀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서  너의 얼굴을 바라봤던 거 기억나? 너의 모든 것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봤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 매끈한 콧날, 웃을 때 살짝 지어지는 반달 눈. 나는 너의 그 바보 같은 웃음이 참 좋았어. 화장하는 내내 어색하다며 거울을 이리저리 비춰보던 너의 모습을 기억해. 그 모습이 평소의 너와는 사뭇 다르게 귀엽게만 느껴져서 와락 안고 싶어 졌어. ‘네가 나를 바라볼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너는 틈만 나면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와락 안아버리곤 했잖아. 그리고는 내가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그냥’이라는 말로 답했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알 것만 같아. 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했던 거야. 다른 수식어나, 이유가 필요 없었어. ‘그냥’이라는 단어 하나에 설레고, 복잡 미묘한 이 마음을 담아내는게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거든. 사랑이라는게 이렇게도 거대하고 벅찬건지 그제야 알았던 것 같아.


올해 너와 나는 붉은 정장을 함께 맞춰 입고, 뱀파이어 분장을 하기로 약속했었어.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랑을 하자며 그렇게 약속했지. 근데 슬프게도, 너와 함께 이 옷을 입지는 못할 것 같아. 우린 뱀파이어가 될 수 없잖아. 영원을 약속 할 수 없는 생의 끝이 정해져 있는 인간이잖아. 잠시 그 사실을 잊고 싶었나봐. 몸이 마음을 따라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마음이 몸을 따라주지 못했어.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든 영원할 수 없잖아. 그래서 생이 끝나기 전에, 마음이 먼저 끝을 낸 거야.




올해도 어김없이 할로윈 데이가 왔어. 아주 예전에 켈트족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1년 동안 산 사람 몸에 살다가 떠난다고 믿었대, 그래서 매년 1년의 마지막 날인 10월 31날 죽은 영혼들을 달래고, 그들이 자신에게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귀신 분장을 하며 돌아다녔다는 거야.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고 착각해주길 바라면서, 그날 하루는 스스로 죽은 생을 산거야. 그러고 보면 사람은 죽어서까지, 미련으로 가득한 위로를 받고 싶은 존재인가 봐.


오늘도 여전히 이곳 이태원은 온갖 음악과 네온사인으로 반짝여. 눈과 귀를 홀리는 이 모든 환영幻影들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으라는 걸까. 거리에는 위로를 받기 위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죽은 영혼들로 가득해. 우리는 누군가의 몸을 빌려서라도 인간이고 싶은가봐. 인간이어야 사랑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외롭지 않을 테니까. 나도 그 중에 하나가 되었어. 오늘은 조금 많이 위로를 받고 싶은 날이야.


사람으로 가득 찬 이곳에서 혹시나 너를 마주치진 않을까 하고 헛된 희망을 품어. 평소라면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진한 화장을 하는 날이었을 텐데, 괜히 거울을 한 번 더 보고 입술을 옅게 발랐어. 그리고 너와 함께 맞춘 붉은 정장 원피스를 입었어. 너도 나와 같이 붉은 정장을 함께 입었기를 바랐어. 혹여나 거리를 걷다 네가 나를, 내가 너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까 봐. 수많은 인파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밤새 거리를 누볐어.

걱정 마. 마냥 슬퍼하진 않았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외국인들과 춤도 추고, 거리에서 사진을 함께 찍자는 사람들과 함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놀았어. 무언가의 힘을 빌려 위로를 했어.  

10월 31일. 이곳은 마치 다른 세계인듯해.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이곳은 늘 시끄럽고 정신없었어. 그리고 뜨거웠지. 올해도 똑같이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 다른 게 있다면, 아주 차가워.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새벽이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 웃고 있는데 하나도 신나지가 않아. 이제 올해를 마지막으로 할로윈 축제는 즐기지 못할 것 같아. 추억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날이라서 마주 볼 자신이 없어.


오늘을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도시 위에 지난날의 상처받으며 죽어간 우리 둘의 영혼을 놓아주고 왔어. 이제는 아프지 말라고. 편히 이승을 떠났으면 한다는 위로와 함께.

오늘 입은 이 빨간 원피스는, 사진으로만 남겨놓을게."

"Happy hallo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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