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바람을 피해, 그와 그녀는 차에 올라탔다. 창문 너머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속절없이 휘청거렸다.
"내가 너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겼어. 나는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무거운 공백을 깨트리며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떤 말을 하든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와 내가 하나처럼 느껴지던 순간에는 너의 모든 것이 괜찮았다. 하지만 그 마음의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짧았다.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차가운 겨울 끝자락에 그들은 모든 연인이 그렇듯 다양한 '차이'를 이유로 들먹이며 멀어져 갔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이기적이다. 그는 끝까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이별을 고했다.
누군가의 연약함을 품어낸다는 것에는 용기와 마음의 여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만큼의 넓은 품과 이해, 그리고 사랑이었다. 사랑 하나로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또 한 번의 이별을 통해 그것은 결국 인간의 오만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내뱉는 순간 입에 발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지만 사랑의 끝에 표현되는 마음들은 아주 쉽게 절제력을 잃고 자기 멋대로 튀어나온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그에게 감당이 되고 안되고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짐'같은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 또한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감정을 다 헤아려주기만을 은연중에 강요해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타인의 감정보다는 자신이 감정이 우선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포용해 줄 것이라는 착각. 문제는 그녀가 말하는 이해가 일방적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사랑의 오류가 시작된다.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행동에 지쳐하는 그를 볼 때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아무 반응이 없는 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서글픔과 권태로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끝내자는 거지? 그래 알았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어."
하나. 둘. 셋. 크게 세 번 호흡을 내뱉은 그녀는 툭 하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끝을 예상했던 그들의 이별은 굉장히 담백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별. 그녀는 차에서 내려 곧장 적막 가득한 집안으로 들어섰다. 모든 이별이 그렇듯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익숙하게 집어 든 핸드폰을 보며 지난밤의 이별이 현실임을 자각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간에 대한 미련과 후회를 정교하게 조각내어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 내기 바빴다. 그 어떤 감정도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바쁜 일상을 살아낸다. 이성과 감정의 벽을 아주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 것, 그것이 사랑의 추락을 더디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뜨겁게 타오를수록, 잿더미를 가득 남긴 사랑이지만, 아주 다행인 것은 한없이 가벼운 바람에 금세 자취를 감추고 또 다른 불꽃을 피워낼 것이라는 거다.
상처로 그을린 마음에 또 다른 그을림이 생길지언정 우린 지독히도 사랑을 사랑한다.
이것이 바로 신이 인간에게 망각을 심어둔 이유.
결국 그 끝엔 또 다시 사랑. 이번엔 다를 거라는 기대와 함께: 우린 그렇게 사랑을 한다.
착각과 오만으로 얼룩진 사랑을 또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