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망했어.”
크게 한숨을 내쉰 친구는 무미건조한 어투로 자조적인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망한 인생, 되는 대로 살지 뭐.” 말에는 서글픔이 가득 묻어나면서도 얼굴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애써 웃고 있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어떤 말로 위로를 해도 부질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이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삶의 무거움이 친구의 어깨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망했다’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존재한다. 희망 없음, 절망, 혼돈, 포기.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살아가야 할 시대를 아무렇지 않게 ‘망 했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 세상에서는 희망이 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주변 이들이 “망했다” 혹은 “가망이 없다” “희망이 없다” “모르겠다”라는 등 부정적인 뉘앙스의 말들을 할 때면 그것이 아무리 농담이라 할지라도 ‘인생의 승패를 정해놓고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꼭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이미 결과가 정해진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이 전쟁보다 더한 시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칼과 창을 들지 않았을 뿐이지 새로운 기술과 환경, 재난 등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과 새로운 방식의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속에서 각자 치열한 영역 다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억울하고 화가 난다. 내가 원해서 시작된 전쟁도 아닌데 나만 총알이 다 떨어진 무기를 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미친 전쟁 통에도 누군가는 살아남는다는데 왜 나만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 것 같을까.
사람들이 묻는다.
“정말 승리자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닌 거야? 이길 가능성이 있기는해? 이미 결과가 뻔한 싸움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더 아까운 거 아니야?”
나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당당히 말한다.
“지금 우리의 전쟁에서는 승리자를 알 수 없어. 그리고 원래 전쟁은치열하고 행복과는 거리가 먼 법이야. 그러니 지금의 혼란이 당연한거지.”
누가 이길지 알 수는 없지만, 승리자는 분명 존재한다. 바로 이런 혼돈 속에서 자신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들만이 승리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벌써부터 늦었다고 하기에 인생은 너무나도 길다. 앞으로수십년은살아갈것이라는것을기억한다면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남을 건데?
‘4차 산업 혁명’ ‘밀레니얼’ ‘포스트 코로나’ 여기저기서 흔히 보이기 시작한 단어들이다. 너무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 지겨워지기 까지 하는 것 같다. 도대체 이것들이 뭐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까. 전 세계적으로 화두인 것을 보면 몹시 중요한 것 같기는 한데 개인이 체감하는 중요도는 아직까지 그리 강하지 않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것들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지금 내 앞에 주어진 현실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힘에 부친다. 위 단어들의 개념을 이해하기 전에 우리가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모든 것이 나의 일상이다’라는 마음가짐이다. 멀리하고 싶다고 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들이며, 가속도가 붙었을 뿐이다.
혁명이란 이전의 관습과 제도, 방식을 완전히 깨트리며 세상 전반 에 걸쳐 모든 것을 새롭게 뜯어고친 변화의 움직임을 말한다. 본격적으로 농업 중심 사회에서 공업 중심 사회로 넘어가기 시작한 1차 산업혁명, 산업의 기술 혁신이 진행된 2차 산업 혁명, 디지털의 등장으로 정보화시대를알린 3차산업혁명,그리고초연결과초지능1,초융합을 테마로 이뤄지는 4차 산업 혁명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세상은 끊임없이 혁명을 일으키며 변화했고, 모든 혁명에는 언제나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가 따라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격렬한 충돌을 일으킬 때마다 인간의 삶은 더 복잡해졌다. 브레이크 없는 충돌이라 우리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저 이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견뎌내고 적응해가는 것뿐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찾아온 4차 산업 혁명은 이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는 공기와도 같다. 공기가 없으면 인간은 죽는다. 생존을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숨을 제대로 잘 쉬는법을 배워야 한다. 들숨과 날숨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삶이 숨 막히고, 숨 쉴 구멍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제대로 호흡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녀들은 한 번 놓친 전복은 다시 잡지 않는다고 한다. 잡힐 뻔했던 전복은 이전보다 더 강하게 돌에 붙기 때문에 그런 전복을 잡겠다고 씨름을 했다가는 호흡이 딸려 목숨이 위협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참 닮아 있다. 지난 시간은 놓아주어야 한다. 과거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해녀가 놓친 전복에 집착하는 것처럼 자신의 호흡을 낭비하는 것과 같다.
이전의 것을 무조건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에 눈을 돌려 가능성을 찾아 떠나라는 의미이다. 새롭게 맞이할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대응책을 가 지고 삶을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우린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미래에 뛰어들어 있다. 그러니 인생을 재부팅한다는 마음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눈앞에 펼쳐질 인생을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세상에 혁명이 왔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인생에도 혁명이 필요하다. 기존의 삶의 방식으로는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 삶을 어떻게 혁명할 것인가. 혼란의 가운데에서 생존하기 위해 서는 아무도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면서 혁명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다.
인생에 반란을 일으키고 싶거든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호흡법 에 집중해라.
그것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