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다.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달라진 삶의 모습만큼이나 직업도 다양하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친구,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 예술을 하는 친구 그리고 프리랜서 친구까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쩜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싶다. 우리들의 대화는 과거로 추억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했었는데, 요즘에는 대화의 주제가 예전과 사뭇 달라졌음을 느낀다. 시시콜콜한 대화뿐 아니라 아주 먼 미래에 대한 대화까지 그 범주가 넓어졌음은 물론이거니와, 그 농도의 차이 또한 크다. 가볍게 시작한 수다도 이야기하다 보면 무겁고 진지한 대화로 끝날 때가 많다. 그러다가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이야기들이 싫어 “내일 걱정은 내일 하고 오늘부터 잘 살자”라고 마무리 짓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불안이 남아 있는 채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로에게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인사 를 건네며 헤어졌다.
근데 우리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2,30대들의 불안은 대부분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취업과 결혼이다. 그러나 이미 취업을 했다고 해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이 평생을 책임져주지 않을뿐더러, 직장에 대한 행복도와 만족도 또한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은 할 수 있을까?’ ‘이 직업을 갖는다고 잘 살 수 있을까?’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녀야 할까?’ ‘지금처럼 벌어서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등 저마다 다르지만 비슷한 걱정을 안고 산다. 우리의 대화 주제만 봐도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시대 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우리의 시대는 어떠한 시대일까.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직업들이 생겨나고 사라졌으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투쟁하고 적응하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어왔다. 그리고 그 투쟁이 다시 한 번 크게 시작된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우리는 또다시 ‘직업 증발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사라질 직업 1순위는 판사라고 한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몇백 권이 넘는 책을 읽고, 수많은 판례를 조사하며 감히 일반인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을 해내야 했던 대표적인 직업이 판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미래 학자들이 뽑은 사라질 직업 1순위에 올랐다. 판사라는 직업에 요구되는 수준 높은 지성과 판단력을 인공지능의 능력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말은 곧, 아무나 쉽게 할 수 없기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직업들도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직업 증발은 소수의 전문직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반 회사에서도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들이 투입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일자리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취업난 속에 힘들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더 큰 불안이 따라오게 된 셈이다. 그래서 이런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안정성이 보장된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바로 공무원이다. 한국 청년 10명 중 4~5명은 공무원을 준비한다. 이유는 단연 안정성이다. 그 때문에 매년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재수, 삼수에 길게는 사수까지 하는 장수생들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응시생은 늘어나지만 뽑는 인원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의 합격 비율은 1.8%에 지나지 않는다. 이 1.8%밖에 되지 않는 확률에 안정성이라는 메리트 하나만 믿고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안정성은 업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안정성’이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다른 기준을 목표로 전환Shift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AI와 인공지능이 발전하여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가 된다고 해서 모든 직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안정적이라 여겨지는 공무원이나 사라질 직업 1순위에 뽑힌 판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이든 절대적으로 인간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그런 부분을 제외한 많은 분야에서 그 수 요가 줄어들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현존하는 직업 중 35%만 남고, 65%는 사라지거나 다른 직업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65%에 속한 직업의 수는 대략 500만 개 정도이다. 65%라는 생각보다 높은 수치는 우리가 지망하고 있거나 속해 있는 직업군 또한 65%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사라지지 않을 35%에 투자해야 할까, 아니면 사라질 65%에 투자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새롭게 창조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투자해야 할까? 어느 곳에 투자할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비하는 능력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는 예측을 뛰어넘는 시대이고,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갈 시대이다. 그 변화에 맞춰 카멜레온처럼 변할 수 있는 인간, 그런 인간만이 직업 증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새로운 직업을 창조할 수 있다. 과거에도 미래를 미리 읽고 준비한 사람은 존재했고, 격변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 또한 존재했으며, 새로운 직업 역시 계속해서 생겨났다.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또 다른 무언가가 새롭게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부의 증발과 동시에 운전기사라는 직업이 생겨났듯이 말이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 것처럼 평생 직업이라는 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직업 증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직업 증발의 시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증발 그 자체가 아니라 증발과 함께 올 변화와 창조이다. 우리는 그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고, 자신의 인생을 앞서 준 비하는 사람의 자세이다.
‘우리의 직업은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아닌,
‘우리의 미래는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