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히던 계절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계절도 하나 둘 옷 갈아입을 채비를 해요. 그런 변화를 온몸으로 알아차립니다.
꽤나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씁니다. 지난 몇 달간 글 쓰는 게 무서워져 용기가 나지 않았아요. 올해는 유독 제가 써 내려간 글의 무게와 힘에 대해 느낀 한 해였다고나 할까요. 남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를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게 되었어요. 누군가의 시선과 기준이 꽤나 크게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오늘만큼은 눈을 감고 날 것의 그대로의 순간을 담아봅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너무나도 화창한 그런 날씨이니까요.
시선을 거두고 마음에 집중해보지만 우린 여전히 사람을, 세상을 무서워해요. 두려움을 느낀다는 건 꽤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는 요즘이에요. 우리 모두에겐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때로는 발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스스로가 싫어 되려 무기력해졌어요. 안정감은 안주하게 만들었고, 설렘은 권태로 바뀌었죠. 어쩌면 확신으로 가득 찼던 날들에 조금의 의심이 싹트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휘청- 나약한 몸뚱이가 끊임없이 휘청거렸어요. 아주 차고 거센 바람에 나부끼는 것 마냥.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잊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감정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끊임없이 점검했어요. 내가 선택한 방향과 가치관에 대한 의심. 이대로 살아가고 싶은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 무엇을 쫓는가. 좋은가 싫은가. 아픈가 아프지 않은가. 괜찮은가 괜찮지 않은가. 무겁고 가벼운 질문들을 끝없이 던지고 또 던졌어요. 현실과 이상 속에서 내가 붙잡아야 하는 것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의 간극을 줄이는 연습을 합니다. 외부의 자극과 선택, 그 사이에 '나'를 가득 채웁니다.
제가 바뀌어가듯 삶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찾아왔어요. 관계의 형태가 달라졌고, 일상의 루틴들의 바뀌었죠. 그동안 제 삶을 채웠던 무수히 많은 것들 중 유효기간이 다 된 것들을 자연스럽게 덜어냈어요. 조금은 씁쓸하고 슬프기도 했어요. 체념일 수도 있어요. 나이 듦이 싫어지는 순간이었죠. 그 속에서 때론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무한하지 않음에 대한 허무함과 자책이 따라오기도 했죠. 나의 부족함을 탓하는 순간은 누구에게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한 때는 끊임없이 사람을 찾기도 했어요. '영원'한 것이라 착각한 것들을 곁에 두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랄까요. 누군가의 힘을 빌려 견뎌내고 싶었던걸 지도 몰라요.
그러다 모든 걸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어요. 공백을 가져보는 거죠. 내가 애쓴다고 바꿀 수 없는 것들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해요.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쏟아야 하는지 발견하는 거예요.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거죠. 어쩌면 지금의 시간은 새로운 것들이 채워질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덜어내고 채우기를 반복하며 새로움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어요. 그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요.
누군가 말했어요. 삶은 생각보다 쉽다고. 그리고 아주 재미있다고. 손을 댈 수 없을 만큼의 뜨거움에서 포근한 온기로 넘어가는 과정이, 그 경험들이 너무 경이롭고 재미있지 않냐며 웃었죠. 삶은 늘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있어요.
따뜻함이 사라진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가요?
누군가가 채워주는 온기 말고, 내가 '나'에게 보내는 온기요. 스스로를 향한 아주 작은 토닥임이요.
모두가 조금은 느려도 따뜻함으로 가득한 일상이길 바라요.
풍요로운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는 날들이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