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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Jan 20. 2022

내가 회사에 들어간 이유

어른이 될수록 겁쟁이가 된다는 건 뭘까.

무서워지는 게 많아진다는 건 어쩌면 아는 게 많아진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될수록 확신과 불안 사이에서 위태로운 저울질을 한다.


겁쟁이 어른이 된다는 건 마음이,

마음이 뾰죡해지지만 동시에 뭉툭해지는 것과 같다.




팔자에도 없는 직장 생활을 한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2년 전 내가 회사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주변 지인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가 회사에 다닌다고? 그 자유로움을 버리고?', '네 성격상 6개월만 다녀도 오래 다닌 거다.'라는 말을 당연하다는 듯이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스스로 조차 잘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전, 모두가 경악할만한 선택을 했던 이유는 아주 명확했다. 그 시기에 나는 스스로의 한계를 경험했고, 나는 내가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겁쟁이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가치관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나의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정말 좋아 일을 찾아 그 일로 돈을 벌었고, 시간이 지난 후엔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아주 조금 더 지난 후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개인의 배를 불리기 위한 일만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할까. 개인적인 행복은 아주 찰나의 행복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에 생기고 나서 크고 작은 몇몇 시도들을 했는데, 그때부터 '함께'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따라왔다. 쉽게 말해 내가 시작한 일을 함께 하고자 했던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었다. 그것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며 다양한 결과들이 따라왔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나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 결과를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 상태였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었다.  결국 여러 시도 끝에 들었던 생각은 비즈니스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얻는 이익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이들에게도 해당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경영자가 되어야 했고, 리더가 되어야 했고, 동료가 되어야 했고, 친구가 되어야 했다. 그 앞에 '좋은'이라는 단어가 붙는다면 더할 나위 없지 좋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잘 해내기 위해선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내가 좋아서 하고싶은 일이 어떤 의미에서건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라면 더더욱 필요했다. 답은 하나.  ,  사업을 하려면 직접  안으로 뛰어는 수밖에 없었다. 크건 작건 회사라는 형태의 공간,  속의 사람들을 직접 경험해야 했다. 밖에선   없는 대표의 마음과 직원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들의 입장 차이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겪어내며 관찰하는  필요했다.


나는 내가 꿈꾸는, 내가 그리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이왕이면 나의 행복과 나의 기쁨과 나의 즐거움을  많은 이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나누. 사실  또한 지극히 나를 위해 시작됐다. 인간의 모든 시작은 개인의 욕망으로부터 탄생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나는 내 한계를 마주한 순간 내 발로 회사에 들어갔다. 이것은 나에게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한 도전에 가까웠다. 차라리 저 지구 반대편 오지에 홀로 던져지길 택하는 게 쉬울 정도로.




이렇게 호기로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직장 생활이 순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 버텨내기에 바쁘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것들을  던져주는 법이다. 그럼에도 배우는  확실하다. 예를 들어 회사가 이익을 창출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과 소통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크게는 지랄 맞은 대표와 상사로부터의 반면교사라고나 할까.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몰랐을 직장인의 애환  그런 것들.  그래서  순간 분노를 유발하는 회사 관계자들을 보며 처음의 다짐을 되새긴다. 아무튼, 그렇게 2년째 다니고 있다. 이젠 조금씩 끝이 보인다. 이대안주함에 잡아먹혀 진짜 겁쟁이가 되기 전에 다시  발로 모험을 택할 시간이 되었음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조금은 더디지만 차근차근 연구소를 준비해 가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잘되어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일까에 대한 생각이다.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결국 '일'이라고 하는 건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기업이지만 그 이윤을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짧은 직장 생활을 통해 확고해진 생각 하나는, 나는 고객 보단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다 라는 마인드다.


[Comany]  'com(함께)'+'pane()'+'ia(먹는 ) 합쳐진 회사라는 단어의 뜻처럼 회사란 혼자서 만들어   없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일과 책임을 분배할  있다. 물론, 이론으로는 쉬워도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어떤 변수들이 있을지는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회사의 정의라면 나는 물론 함께 일하는 이들행복하고 그들의 능률이 올라야 긍정적인 방향으로 회사가 성장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알고 만들어가는 일은 재미있다. 가슴 뛰는 것을 통해서 원하던 결과를 얻는다는 건 확실히 삶을 살만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과 별개로 불안은 늘 따라온다. 그 불안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큰 것 까지, 많은 선택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럴 때면 지금의 안정적인 생활을 조금 더 영위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마음이란 게 이다지도 간사하다. 하지만 이런 삶이 스스로에게 충만함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불안함을 안고 확신을 따라가기로 했다.


잔뜩 겁을 먹은 채로 한발 한발 내딛는다.

몰아치는 불안에 희열을 느끼던, 때처럼.


나는 겁쟁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혹여나 겁쟁이가 되더라도 내딛은 길 위에서 만난 누군가와 함께라면 덜 무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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