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회사에서 좋은 제안을 받았다. 독대를 했고, 나는 거절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제안이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말을 들었다. 난 꽤나 유능한 직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을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가치관이 충돌할 때였다. 나는 걸어가는 길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눈과 귀를 가리고 무작정 목표를 향해 죽어라 달리는 짓 따윈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자주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의 표정과 목소리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위치에서 오는 무력감과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느날엔가 엄마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어떻게 굴려지고 사용되는지, 나는 그것을 최대한 부끄럽지 않게 증명하고 싶었다.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러나 모두가 같지 않았다. 아니, 모두가 아주 쉽게 패했다: 포기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충돌은 아무것도 깨트릴 수 없었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자본은 이렇게 생겨난다는 것을 내 눈앞에 보란 듯이 던져줬다. 나는 그것을 주어들고 이리저리 휘둘렀다. 휘둘리길 선택했다. 이것은 보통의 어느 평범한 삶의 한 단 편이었다. 아, 생각보다 평범은 괴롭다. 그것은 규정 내려져왔다.
좋은 결과물과 입에 발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곤 했다. 전부 나쁜 건 아니었다. 분명 좋은 것도 존재했다. 늘 어느 한쪽은 득을 봤다. 때때로 모두가 득을 볼 때도 있었다. 모두가 행복했다. 억지로 감사한 것들을 찾았다. 그것은 확실했다.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피폐해져 갔다. 그들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웃을수록 스스로가 더 미워졌다. 나의 죄책감은 그저 자신이 무력한 존재라는 자각에서부터 온 죄책감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선택을 한 걸까.
그렇다. 마음. 그러니까 내 마음.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던 거다.
나는, 어떤 확신을 얻고 싶었던 거다.
그들이 웃는다. 아무렇지 않게 웃어댄다.
알았다. 나는 저 웃음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는 걸.
나는, 유능한 직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