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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Apr 18. 2022

1월 1일

1월 1일. 나는 서른이 되었다. 겨우 달력 하나를 넘겼을 뿐인데 숫자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이제 작년 달력을 버릴 때가 왔다.  쓰레기 통에 쳐박히는 달력이 꼭 작년 내 마음 같았다.


"웰컴 삼십!!"  

   

언니가 놀리듯 말했다. 그녀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울상을 지으며 '아니야, 아직 만으로 29이라고!'  말했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나의 외침 따위는 부질 없었다. 이미 해가 떴고, 날이 밝았으니...


한숨을  내쉬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서른 별거 아니네!!덤벼라.까짓거."

내 안의 또자른 자아가 튀어나오기라도 한듯 큰소리로 외쳤다. 어쩌면 이제 막 시작된 서른을 향한 오기였을지도 모른다. 서른이 되면 큰일이라도 날 줄 았았던 스물아홉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신기하리만치 평온한 마음에 스스로가 놀라움 따름이었다. 이럴려고 작년에 그렇게 오두방정을 떨었던 걸까.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나의 하루는 어제와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약간의 허탈감이 밀려왔다.


작년 12월. 서른을 며칠 앞둔 어느날, 어떤 날에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날이 밝았는지도 모르게 잠을 잤다. 물론 진짜로 잠에 든 것은 아니다. 그저 머리끝까지 덮힌 이불을 어둠 삼아 꿈으로 향한 뿐이었다. 그러다 어떤 날에는 어둑한 커튼을 쳐내고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겨울의 시린 바람을 방안으로 들인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집안 곳곳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며 청소를 했다.


이것은 마치 두세계가 공존하는 것과 같았다. 9와 0. 그 사이에서 어둠과 밝음이 치열하게 저울질을 했다. 어느 하나로 재단 할 수 없는 삶의 두 모습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숫자 속에 갇혀 산다는것은 어떤 의미일까. 갇히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나 역시 사회의 시선과 잣대 속에 살아가는 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연연하지 않으려 매일 같이 마음에게 이야기를 한다. 하루, 한 달, 일년,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눈물'이라는 단어로 치환되곤 했다. 그 눈물은 포용의 눈물이기도 하지만, 외로움의 눈물이기도 하다. 어른이 되고싶었던 어린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 어른은 외롭다.


달력의 첫 장을 넘겼다.

 

1월 1일.

순간, 달력 위에 써있는 1이라는 숫자가 왜이리도 단단하고 굳건하게 보였는지.

위태로울 지언정 절대 쓰러지지 않을것만 같았다.


1월 1일.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함과 동시에 마음의 무게를 대신 짊어지고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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