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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Jun 08. 2022

삶의 페르소나

삶은 생각보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한 명의 인간이 여러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이죠. 이 말은 겉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누군가의 삶을 재단할 수 없다는 의미기도 해요.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은 본인밖에 알 수 없고, 발견하는 것 또한 스스로 해야 해요. 


수많은 스타들이 대중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 사이에 경계가 있듯, 모든 사람 역시 여러 위치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얼굴 가지고 있어요. 그 격차의 크고 작음에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는 모습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 보이고 싶은 모습만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그 모습에는 개개인이 바라는 삶의 형태가 투영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건 인간이 가진 본능일지도 몰라요. 더군다나 다양한 온라인 매체는 보기 좋은 삶에 대한 욕망을 더욱 극대화시킵니다. 얼마든지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저 또한 비슷해요. 적재적소에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잘 가공해 만들어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철저히 감추기도 하죠. 그러다 가끔 그 사이의 균형이 틀어질 때가 있어요. 뭐든 적당한 조율이 필요한 법인데, 무언가를 쫓아가다 보면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죠.


그럴 때면 잠시 멈춰요. 무언가를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서요. 하지만 너무 멀리 갔을 땐 그 멈춤의 시간이 꽤나 길어지기도 합니다. 한 번에 방향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고장 난 나침반을 바다 위로 던져버려요.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마음 불쑥 올라오는 거죠. 근데 참 신기하게도 나침반을 버리고 나니 무던히 애쓰던 때보다 더 가볍게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딱히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필요도, 감춰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해방감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사람은 익숙한 것에 끌리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세상이 사랑하는 것을 나도 사랑하고 싶어 하죠.


결국 그렇게 또 다른 삶의 형태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삶은 원래 여러 얼굴을 해요. 우리가 수없이 많은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삶 또한 다채로울 수밖에 없는 거죠. 그 대신, 저는 그렇게 많고 많은 나의 모습들을 모두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해요. 억지로 혹은 고통 때문에, 아니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 기거나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또한 나의 모습이구나 하고 온전히 사랑하면서 드러내는 거예요. 도망치지 않았으면 해요. 그 또한 내 삶의 한 조각일 테니까요. 


저는 모두의 삶이 그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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