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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06. 2022

일그러진 욕망

어릴 때부터 나는 나의 이중성에 치가 떨리도록 놀라던 때가 많았다.


“나를 거부하는 사람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나의 어둠을 만났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치부였다. 돌이켜보면 어떻게든 다른 사람보다 높이 올라가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무던히도 애써왔다. 내 안의 시기와 질투를 숨겼다. 그래서 끊임없이 마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짓밟았다. 나에게는 이런 마음이 타인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과도 같았다. 그 욕망이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어쩌면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나의 추악함이자 어둠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어둠을 드러내진 않았다. 오히려 아주 철저히 보기 좋게 포장된 모습만 보였다. 그래서 뭐든 속도전이어야 했다. 마음을 들키기 전에 가능하면 빨리 마음의 공허를 어떻게든 채워야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가난해져 갔다. 내가 바라던 삶이 펼쳐지기도 전에 숨이 막혀왔다. 이번엔 내 안의 나를 죽였다. 더 강해져야 했다. 그것은 분노에 가까웠다.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분노였다.


그러나 웃었다. 이것 역시 완벽한 이중성이었다. 어느 날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히 혼자가 될 수 있는 공간의 문이 열였고, 나는 그렇게 표정을 잃은 채 침대에 쓰러졌다. 거울 앞엔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텅 빈 영혼, 어떤 혼돈.


시간의 기로에 갇힌 채 삶이 버겁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내가 감당해 낼 수 없는 큰 파도가 연이어 삶을 덮쳤다. 잠을 못 자 밤을 새우는 날들이 빈번했다. 늦은 새벽까지 뒤척이다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기를 반복했다. 애원하듯 갈구한 평화는 점점 달아났고 영혼에 가뭄이 일듯 사랑 또한 말라갔다. 안과 밖의 차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랑의 무게에 짓눌리는 듯했다. 아무도,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했고, 사랑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없었다.


껍데기, 시간, 공백, 느린 속도, 뒤틀리는 궤도.


그날은 여느 날과 같았다. 잠은 오지 않았고,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켰다. 찰나였다. 방안을 가득 채운 작은 불빛이 일렁이듯 마음에 닿았다. 한걸음 한걸음,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나의 민낯을 보았다. 나의 나약함을 보았다. 완벽히 무너진 실재實在를 보았다. 망가진 모습으로 사랑을 갈구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렇게, 그렇게 되고서야

비로소 일그러진 욕망을 내려놓았다.


암흑. 원형. 본질.

가면 하나를 벗었다.


요즘 인생의 화두는 상처입지 않은 ‘사랑’이다.


상처입지 않았다는 것은 상처를 수용하는 일이다. 일그러진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온전함의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본질은 발견하는 일이다.


그래야, 그래야만 내 안에 사랑을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겹 한 겹, 걷어낸다. 회복 시간이 더디었던 만큼,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일 또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설령 조금 시간이 걸리고,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로 했다. 그것이 오랜 시간 잊었던 나의 빛을 다시 찾아가는 길이 테니.


어두움도 괜찮다. 어둠이 있어 빛이 더 의미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기꺼이 어둠으로 들어간다. 희망은 그곳에 있다는 말을 이제야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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