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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Nov 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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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랑의 잉태

날이 좋던 날에 무작정 걸었다. 모두가 함께 웃었지. 무척이나 인위적인 표정으로 말이야. 그러다 어느 순간 멍해진 상태로 생수 한 잔을 들이켰는데, 어디선가 불빛이 보였어. 찬란한 불빛 속에 왜 우리의 빛은 없을까 하고 생각했지.


휘청이는 몸뚱이를 일으키며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꿈 깨. 할 수 있는 일을 해.”, “지랄하지 마. 분수에 맞는 일을 해.”


낮게 욕을 내뱉었다. '개소리 집어치워. 너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그 모양인거야?' 하고 반문했다. '꿈에 부푼 마음 하나쯤 붙잡고 살아가는 게 뭐 큰 죄라도 되는 거야? 적당한 현실 타협은 결국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소리쳤지.


마음을 버리라는 그 말에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걸 버리면 우리는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찢기도 밟혀도 웅크리고 있는 것보단 몸집을 키우는 게 낫다는 게 이 세계의 결론이었다. 몸집이 커진 빛은 어둠을 삼켜버리고 말 거야. 빛을 이기는 건 없어. 사람이 되려고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야 해 우리는.


평범함 속에 우린 이미 너무 많은걸 잃어버리고 있었다.


무언가 엄청나게 큰 지각변동이 삶의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것을 경험해내는 중이라고 했다. 한때 가득했던 나의 세계가 조금씩 무너지자, 혼란도 잠시. 예전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를 택했다. 물론 여전히 낯설고 힘에 부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끔 무언가 또 다른 가면인 것 같기도 해.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야. 이미 새로운 세계를 보았거든. 이상한 꿈과 같은 세계를.  그래서 이왕이면 그 속에서 가능한 많은 사랑을, 그래. 그 사랑을 찾아내고 싶었던 거야. 어둠 속에 숨어있는 아주 작은 희망을 말이야. 긴 터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이건 이미 다른 세계인 거야. 그 세계의 밤. 또 다른 밤. 조금은 긴 밤말이야. 걱정하진 않아. 어둠이 강할수록 빛은 더 눈에 잘 띄는 법이니까. 그래서 난 매일 나의 어둠을 만나. 더럽고 악하고, 연약한 어둠을.


속도를 잃고 휘청거리기를 반복했다. 아니,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아예 엔진을 꺼보기로 했어. 무섭지. 고장 난 건 아닐까 하고 온갖 불안이 괴롭히니까. 그럴 땐 귀를 막고 눈을 감아. 잠시 희미해진 것들을 찾기 위해 말이야. 잔상처럼 떠도는 타오르는 불을.


아무렇지 않게 웃지만 그건 아주 잠시야. 결국엔 모두가 그런 웃음 뒤에 공허함으로 몸부림친다는 걸 알아. 생각해봐.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어. 그래서 늘 깨어있어야 하는 거지. 우린 아주 쉽게 유혹이 넘어지니까. 가끔 확신에 찬 이 말투가 독이 되어 돌아와도 이미 이 세상은 흘러가고 있잖아. 알게 모르게 그 사이에 또 흐르고 흘러.


그래서, '어떻게 살 건데?' 하고 지겨운 질문을 다시 하는 거야.


욕심과 아픔으로 얼룩지거나, 여유가 없는 밤이 오면 마음이 한껏 쪼그라들기도 해. '아,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하고 현타가 오기도 하거든. 미처 살피지 못한 마음들이 공중에 떠다녀. 놓쳐버린 것들이지.


단호함과 유연함, 쳐낼 것들과 잡아야 하는 것. 적절한 조화. 어쩌면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법칙 같은 걸지도 모르겠어. 언제나 새로운 세상은 다시 배워야 하는 것들 투성이니까. 새하얀 도화지와 같은 어린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거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누군가 그러더라. 그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거래. 적당히보단 적절히 가 중요하다고. 생각과 감정이 함께 살아있느냐 그 차이라는 거야. 생생함과 함께 은은하게 타오르는 불 마냥. 그래야 그동안 놓친 것들에게 미안함을 고하고, 더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행복하냐 물었지. 그저 확신할 뿐이야. 행복이 그곳에서 온다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만, 아이러니한 건, 최근에 웃었던 기억이 없어. 그러니까 기쁨이나 즐거움과는 조금 다른 부류의 행복인 거야. 오히려 더, 이전보다 더 많은 눈물과 아픔과 상처가 있지. 그래서 꾹꿈 참아내는 거야. 가끔 헷갈려. 무서운겠지. 그래서 난 그저 걸어가기로 택한 거야. 가능하면 사랑을, 지치지 않을 정도의 사랑만큼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해.


그래야 하잖아.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 결국 모든 건, 마음에서 출발하니까. 감정을 버려.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모순적이지만 그래야 해. 위로와 빛이 가장 필요한 곳에 닿으려면 그래야 해. 결국 그 안에 아주 큰 사사로운 감정보다 훨씬 더 크고 위대한 것들이 있을테까. 가능하면 판단하지 않고 그저 주는 거야. 우리가 생각한 인간이 할 짓은 아니지. 지금의 인간은 몹시 메말라있으니까. 우린 손해 보기를 죽도록 싫어하잖아. 근데도 어쩌겠어. 사랑에 답은 하나인걸. 그래서 그저 조용히. 아주 조용히, 오랜 시간. 나의 자리에서. 약간의 무거움과 짙은 상처와 그 안의 희미한 희망을 붙잡으며 겨우 살아내는거야. 이건 끝나지 않는 여정일거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의 말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찾고 싶거든 가장 어둡고 가난한 곳으로 가세요.'라고 한 그 말을. 그렇게 알을 깨고 나온다. 깨지 않으면 죽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이제 막 한걸음을, 힘겨운 한 걸음을, 환희에 찬 걸음을 내딛는다.


그 끝에 마음이 아픈 만큼 사랑하고 싶다고 외쳤다.

그래야 그 마음들을 어루만질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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