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시대의 마음 기록
불안의 시대.
불안은 이 시대를 어떻게 바꿔놓고 있을까.
그리고 한 개인의 삶은 어떻게 다시 쓰이고 있을까.
요즘 내 삶의 화두는 ‘불안’이다. 돈, 사랑, 관계, 죽음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불안을 느끼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 모든 불안은 결국 ‘미래’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연결된다. 아직 오지 않은 시작,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현재를 잠식한다. 전에는 이름조차 불러본 적 없었던 이 감정을 요즘은 매일같이 마주한다.
이것은 단지 ‘나이듦’에서 오는 걸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오늘도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작은 선택 하나에도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그 결론은 대체로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앞서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가 흘러가곤 한다.
어쩌면 지금의 이 불안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자연스럽게 겪는 불안일지도 모른다. 기술이 발전했고 삶은 더 윤택해졌다고 하지만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비교 대상이 늘어날수록 불안은 더 커진다. 어쩌면 인간에게 ‘불안’은 디폴트 값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과거라고 불안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그때도 분명 앞날에 대한 불안은 존재했다. 스무 살의 나도, 서른 살의 나도 미래를 몰랐다. 무엇을 하며 살게 될지, 누구와 함께할지, 어디에 있을지. 그 불확실성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불안보다 기대감을 더 크게 느꼈다. 불확실성, 그러니까 예측 불가능에서 오는 기쁨을 더 많이 누리던 때. 계획하고 계산하는 삶보다는 온몸을 내던져 경험을 만끽하던 시절이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불안이 적던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진 걸까. 그때의 나는 일단 행동했다. 생각이 완벽히 정리되지 않아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도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행동하기 전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이 선택이 가져올 결과, 잃을 것, 평판, 실패의 가능성, 이것이 최선일까. 생각은 끝없이 가지를 뻗고, 몸은 그 자리에 멈춰 선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은 게으름일까. 일종의 나태함일까.
불안의 상태는 일종의 정신착란과도 비슷하다. 불안함에 동동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짓눌리는 나를 발견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집중이 되지 않는다. 책을 펼쳐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 영상을 틀어놓고도 영혼은 다른 곳에 가 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마음은 현재를 떠나 헤매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지 못한 채,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속에서 헤매이며 현재를 놓쳐버린 상태.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 온몸의 영혼이 현재로부터 달아나 미래 어딘가로 도망친 듯한 느낌. 작은 시도조차 두렵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도,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도, 익숙한 경계를 벗어나는 일도.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가 된 걸까. 경험이 쌓일수록 상실의 무게를 알게 되어 조심스러워진 걸까. 무엇이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일까. 단지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까. 개인적인 변화 때문일까. 아니면 그 둘의 결합일까.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려 애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것에 종속된 상태일지도 모른다.
실패가 따라다닌다. 나는 스스로에게 패배자의 낙인을 찍는다.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족쇄를 스스로 쥐고 놓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현대인의 불안이 지위에 대한 불안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 비교로 점철된 일상. 성공의 기준은 높아지고, 선택지는 많아지고, 비교 대상은 무한해진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나는 늘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진다. 불안이 이 시대의 보편적 감정이 되어버린 이유다.
SNS 속 타인의 성공, 끝없이 쏟아지는 ‘해야 한다’는 메시지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초조함.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요즘 유독 ‘불안’이라는 단어가 일상에 지독하게 달라붙는다. 불안을 제거하려는 몸부림도 곳곳에서 보인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루틴을 만들고, 투자를 공부하고, 부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대비책을 세울수록 오히려 또 다른 불안이 생겨난다. ‘이것만으로 충분할까’라는 새로운 불안. 끝없이 덧씌워지고, 끊임없이 새로 형성되는 불안의 레이어들.
그 불안은 물질적 충동적 소비로 이어지기도 한다. 새 옷을 사면 잠시 기분이 나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공허가 일시적으로 채워지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에 불과하다. 공허와 허기를 소비로 억눌러보지만, 메워지지 않는 구멍 속으로 무언가를 쏟아붓는 일은 다시 불안을 불러온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다시 불안해한다.
불안이 분노로 이어질 때도 있다. 자신을 향한 분노, 세상을 향한 분노, 혹은 방향을 잃은 분노. 불안을 피하려다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내는 순간들도 있다. 불안이 야기하는 잘못된 선택들은 무엇일까.
불안은 두려움일까. 공포일까. 고통일까.
불안에 휘청인다는 것은 아주 미세한 바람에도 살갗이 에이는 듯한 고통일지 모른다.
발 디딜 곳이 단단하지 않은 감각.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예감.
문득 생각한다.
불안은 사랑이 사라진 상태가 아닐까.
불안은 타인이 사라진 상태가 아닐까.
불안은 오로지 ‘나’로만 가득 찬 상태가 아닐까.
내 안으로만 시선이 향할 때 불안은 극대화된다. 나의 미래, 나의 부족함, 나의 선택. 나라는 작은 섬에 고립될수록 불안은 자란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넘어서는 일이다.타인과 연결되고, 돌보고, 염려하는 일이다. 결국 그 연결이 끊어진 자리에 불안은 집요하게 뿌리를 내린다. 지독히도 또아리를 틀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불안.
어쩌면 이것은 자기 확신의 부재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이 삶이 괜찮은지, 내가 옳은 방향인지.
이 확신이 부족하니 자꾸 비교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나를 갉아먹으며 정답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닐까.
불안의 시대.
이 불안은 영원히 함께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라져서는 안 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미래를 상상하고 선택하고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느끼는 감정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 불안에게 잡아먹히고 싶지는 않다.
그저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
불안을 적으로 두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완벽하지 않아도 작은 행동 하나를 시도하고,
불안 속에서도 기대를 잃지 않고,
‘나’라는 섬을 조금씩 벗어나 다시 타인과 연결되는 일.
아마도 그 작은 변화들이 모이면
불안과의 불편한 동거도 조금은 견딜 만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이 불안 속에서도 계속 살아보려 애쓰는 일,
그 자체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