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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05. 2019

아침이 오는 어려움에 대하여

프롤로그


그녀에게 평화는 삶의 쉼표 같은 단어였다. 지속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잠시 만날 수 있는 일종의 꿈같은 거였다. 그날 밤 그녀는 갑자기 그네가 타고 싶어져 집 앞 놀이터로 향했다. 달빛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보니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네가 보였다. 흔들흔들. 붙잡아주는 이 없이 흔들리던 그네의 모양새가 꼭 자신 같다 생각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그네에 앉아 발을 굴렀다. 조금 더 높게. 세게.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발을 굴렀다. 귓가에 울리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그녀에게 자유였다. ‘하늘을 난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지만 이 자유마저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는 사실에 이내 슬퍼졌다. 중력을 거스르고 싶은 욕망이 무색하게 땅을 향해 떨어지는 육신이 원망스럽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급격하게 모래에 발을 딛음과 동시에 그녀는 무너지듯 그네 아래로 떨어졌다. 단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앙상한 어깨에 미세한 떨림이 위태롭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어요.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소리에 그녀는 소스라치며 주위를 살펴봤다.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던 작은 생명체는 그녀의 곁에 앉아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생기 있는 눈동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앙다문 입술. 아무 의미도 내포되어있지 않은 것 같은 표정. 아이는 작은 손으로 그녀의 앙상한 등을 쓸어내렸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어둠 사이로 그녀의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아이는 처음 했던 것처럼, 다시 한번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어요.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한참을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그것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아이 앞에서 추락하듯 눈물을 흘린 자신의 몰골에 대해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작은 생명체에게서 느껴지는 단단함에 동요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는 이미 떠나고 사라진 후였다. 노란색, 헬레니움 한 송이만 덩그러니 놓인 채로.

눌러왔던 울음을 쏟아낼 때 그녀는 단번에 알아챘다. 아주 잠시 평화가 찾아봤다는 것을. 흔들리는 그네 위로 달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서글픈 밤이었다.

헬레니움 꽃말 : 눈물


사진 : @0rok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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