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노자의 국내 정치 관람기
이 글은 소설이다.
아무런 근거도, 맥락도 없는데, 궁금해하다 보니 떠오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쓰는 글이다.
그들이 그렇다는 근거도, 그들의 배경에 정말 이러한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근거도 없다.
그렇지만, 나 같으면 그랬겠다 싶어 쓰는 그럴법한 소설이다.
#Scene 1.
어제 낮에 조국 법무장관이 발표하는 '검찰개혁안' 장면을 보면서 왠지 기시감이 들었다. 찾아보니, 박상기 법무 장관 시절에 이미 발표했던 내용이 헤드라인으로 똑같다. 검사장 전용차량을 없애고 어쩌고저쩌고.. 별일 아니잖아, 뭐지? 왜 기대했던 수사권 관련된 이야기 들은 안 하는 거지? 이 사태의 핵심은 결국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목적을 배경에 둔 거 아닌가?
가만히 예전에 사법시험을 해 보겠다고 깝죽거리며 들춰 보았던 법 내용들을 되짚어 보았다. 검찰의 수사권에 대한 근거 규정은 형사소송법에 있다.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갖고, 사법경찰관리는 그 지휘에 따라 수사한다. 그러니까 사실상 경찰은 수사에 있어 보조기관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근거규정이 '법'에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입법체계상, 입법을 발의할 수 있는 헌법기관은 국회와 대통령 두 곳이다. 그리고 의결을 통해 '법'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은 국회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장관이라고 해도, 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수사권 조정은 불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아.. 이런 단순한 사실을 놓치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니. 순간 법 공부에 투자한 그 시간들의 나에게 미안해진다.
아무튼, 그럼 조국 법무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장관으로서 조국은 해당 조직의 개편과 업무 범위를 정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한 내용들이 바로 그 권한의 범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발표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발표와 더불어 앞으로도 지속적인 검찰의 수사범위 제한에 관련된 내부 조치들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게 그럼 영원히 가능한 조치들인가? 아니다. 법무장관 조국이 취임되자마자 얼마 안돼 이런 조치를 하겠다 한 것처럼, 나중에 정권이 바뀌고 법무장관이 바뀌면 얼마든지 원상복귀가 가능한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Scene 2.
조국 법무장관이 개혁안을 발표하겠다는 당일, 검찰에서는 조국 현 장관의 친동생을 구속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흥미진진한 장면이다. 자신을 치려는 자기 조직의 수장의 뒤를 치는 격 아닌가. 그 어떤 정치 드라마 보다도 재미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당사자로서는 얼마나 큰 결의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인가, 조국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양 쪽 모두에 저절로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이 순간 국민들은 어떨까. 사실 국민들이 수사권 조정에 대한 어떤 실리적 연관이 있기는 한가? 대부분의 선량한 국민들은 사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누가 갖든 어차피 똑같다 생각할게 분명하다. 국민들의 지적 수준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자기랑 직접 상관없는 일이라면 어떤 지식인이라도 마찬가지로 별 관심 없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그만큼 각자의 영역에서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를 갖춘 사회이기도 하다. 그 신뢰가 서로의 영역에 대한 무관심을 가져오기 아주 쉽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이 일은 그 검경 수사권의 갈등이라는 배경 위에 표출된 사건이라는 점을 넘어 또 다른 상징을 갖고 있다. 여권의 의지를 표상하는 인물로 조국이 등장하고, 어쩌다 보니 야권의 의지의 표상처럼 되어 버린 윤석열 검찰 총장의 두 행보 간의 대립인 것이다. 사실 야권의 의지의 표상이라기보다는, 그냥 여권의 반대편에 서 있으니 야권의 표상인 것처럼 둔갑되는 면이 크다.
이때 문득, 궁금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임명 안에 대한 청문회가 있었던 게 엊그제 일처럼 선하다. 여권에선 통과시키기 위해 난리였고, 야권에서는 낙마시키기 위해 사활을 건 듯 보였다. 그럼 뭐지? 지금의 이 그림은?
#Scene 3.
한 번 생각해 볼까?
청와대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할 당시에, 지금의 이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을까? 조국은 한 없이 투명한 존재니 아무 탈 없이 무사히 통과될 것이고, 검찰의 개혁에 윤 총장이 네, 받들겠습니다. 할 줄 알았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윤석열 검찰총장이 자기 조직에 충성한다는 그분이 검찰의 권력의 커다란 한 축인 수사권을 조정하려는 움직임에 가만히 있을 거라는 예측은 하기 어렵다. 결국 반대하고 나설 것이란 점을 다 알았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 봐야 한다. 몰랐을까가 아니라,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하는 점이다. 왜 이 어찌 보면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수사권 조정의 큰 축을 흔드는 문제를 앞에 두고, 가장 까다로운 상대를 그 수장으로 앉혀 두었을까?
정답은 민주적 정당성에 있다.
이게 뭔 뜬구름 잡는 소리냐 갑자기 하겠지만, 지금 우리는 정치 얘기하고 있지 않나. 잘 한번 짚어보자. 아무리 조국 법무장관을 임명한들 수사권 조정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앞서 말했듯이 그건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지금 시국에서 자유 한국당의 결사반대를 불 보듯 뻔하게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 법을 개정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문제다. 그렇다면, 가장 가능한 시나리오는 우선 법무장관을 이 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사람으로 변경한다. 그가 바로 조국이다. 행정부가 추진할 수 있는 가능한 최대한의 범위에서의 조정을 먼저 추진하기 위함이다. 그전에 해야 할 것은 조국과 맞설 상대가 한 명 필요하다. 그 상대는 수사권과 관련된 검찰 개혁 움직임에는 맹렬히 반대할 수 있어야 하고, 다만 청렴성이나 객관성 면에서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는 액션이 있었던 사람이어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바로 윤석열이다.
이렇게 두 주인공을 세우고, 스토리가 시작된다. 조국은 예정대로 장관의 권한 안에서 개혁을 추진하려 하고, 윤석열은 이에 저항한다. 저항이 없는 일방적 정책 시행은 국민의 관심을 얻을 수 없고, 되려 독선적 행정운영이라는 비판을 양산해 낼 수 있다. 아무 관심 없던 사람도 '독선적'이라는 비판과 그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반감을 갖고 이게 어떤 불씨로든 그게 표출되어 추후 이 정권과 여권과 관련된 투표에 반대표를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양쪽의 대립 개념이 생기고 한쪽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동시에, 고압적인 이미지로 점철되어있던 검찰을 국민의 눈높이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정의의 사도, 그리고 다른 한쪽은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 가지고 있는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그의 가족까지 털려는 권력의 칼로 프레임이 만들어진다면, 이제 이야기가 아주 다르게 전개된다.
'수사권 조정'이라는 자칫 국민감정과 부합될 수 없는 그들만의 안건이 이 두 사람의 대립 광경으로 인해 마치 내 일처럼 지켜야 할 안건으로 급부상한다. '조국수호' '조국 타도' 같은 구호가 그가 말하는 개혁안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결국 내가 지켜낸 조국이 진행하는 추진 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며 동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진 조국 개인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반국민 정서적인 이슈들은 청와대에서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알았더라도 이만큼의 시나리오를 소화해 줄 대역이 없어 강행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자,,, 이렇게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게 왜 중요할까?
앞서 말했듯이, 지금 국회 상황에서는 법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 그리고 현 정권 내에서 그걸 추진해 내지 못한다면 정권이 혹시나 반대쪽으로 넘어간 다면 이 일은 영영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언제를 노려야 될까? 다음 총선은 2020년 4월이다. 그때까지 한국당이 지금처럼 아무 이슈도 못 만들고 자기 파괴적 행동만 계속해 나간다면, 총선에서 민주당은 의결정족수를 채울 기대를 해 볼 수 있다. 그러면, 바로 그 시점이 이제 드디어 법의 개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점이 되는 것이다. 청와대와 거대 여권이 함께 중요 안건을 한방에 처리한다. 그리고 그전까지 만들어진 해당 안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일종의 선악 대결을 통해 만들어진 '선의 승리' 같은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것이다.
조국은 청문회 과정을 통해 본인이 만들어 냈어야 할 파급력의 상당 부분을 잃고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현정권에 우호적인 나의 지인만 보더라도, 조국에 대해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조국이 진행해 나가는 윤석열과의 한 판에서, 법적으로는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겠으나 이슈를 국민적 공감대로 엮어내는 데 성공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게 만약 정말로 의도된 잘 그려진 판이라면, 이번 정권에 대해 한국당은 승산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수준 높은 판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시작할 때부터 놀라웠지만, 그 이후로 정권을 운영해 나가는 청와대 혹은 여권의 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대체 누구냐 이런 전략의 키맨이.
한국당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큰 패착은 윤석열 편에 서서 검찰 수호를 외치거나, 혹은 계속해서 조국 타도 만을 외치는 길이다. 이렇게 해서 일시적인 세력을 모을 수는 있을지 모르나, 여기엔 결집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지지가 아니라, 반대를 위한 결집 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주체가 사라지면, 혹여 조국이 사퇴를 하거나 하는 경우엔 그 결집의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주야장천 내년 총선만을 바라보며 세력 결집을 위해 행보를 했던 한국당의 위력이 겨우 이 정도 인가 싶을 만큼 아쉽다. 개인적으로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수가 주창해야 할 가치는 반드시 필요한 가치이고, 그것을 대표해야 하는 정당이 한쪽 축으로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앞으로는 진보정당과 민주당이 그 자리를 다 대신하지 않을까 싶다. 보수라면 다소 '국가주의'적이다 싶으리 만큼 '보수적' 이어야 하겠다만, 한국당 하는 걸 보면, 보수당이라기보다는 미안하지만 '일본 한국 주재당'같으리 만큼 이해가 안 가는 행보를 보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들이 지키려는 가치인지, 국민감정이 원하는 '보수'를 어서 찾지 못한다면 지금 같은 천재 전략가의 행보 앞에 이리저리 따라가다가 몸 상하고 맘 상하고, 또 이합집산만이 살길이 되어 버릴 판이다.
외국에서 일하는 한국이 노동자의 한국 정치판 관람 소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