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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Sep 15. 2022

Ep 32: 인생 최악의 순간 Part1

사건 당일의 회상

 화학 참모로 사단에서 근무하고 있던 동기생 중 한 명이 우리 부대로 정기적인 방문을 하였다.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기가 반가워서 인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야, 근데 너 괜찮냐?"
"응? 뭐가?"
"아니, 사단 작전실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오가는데, 여기 부사관 텃세 어마 무시하다던데?"
"응? 무슨 부사관 텃세?"
"여기 행정관이 기무대 친한 중사도 있고, 인맥도 넓어서 끗발 날린다더라. 너도 조심해!"
"아, 그렇냐? 여기가 악명이 자자하다는 건가?"
"사단 내에서 최고란다! 어쩌면 군단 내에서도..ㅋㅋㅋ"
"ㅎㅎㅎㅎㅎㅎㅎ...."
"그래.. 아무튼 몸조리 잘하고, 또 연락하자! 난 바빠서 빨리 가봐야 해!"
"그래! 어서 가봐! 나중에 연락하자고!"


 동기생이 타고 온 레토나를 마중해준 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기가 부사관 텃세로 유명하단 말이지? 소문은 하루아침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랬다는 거야? 그리고 그 소문의 출처는 누구일까?'
'하필 걸려도 이런 곳으로 걸려서 사서 고생이네..'
'그래도 다행이다. 이곳이 최악이라면, 다른 곳은 이보다는 쉽겠군..'
'그래서 그랬구나....'


 순간 복잡 미묘한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우후죽순 떠올랐다. 그러던 와중 어느 날 비밀리에 장교들끼리 회식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행정관은 내가 두고 보고 있으니깐 꼬투리만 잡히기만 하면 그냥 콱!"
"진짜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추후에는 반드시 무슨 대책이라도...."
"너무 비협조적이어서 부대 분위기가 엉망진창입니다."


 대장님도 행정관의 텃세와 기세에 몸서리치듯 끌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참아가며 이를 갈고 계시는 중이셨기에 술자리 안주에 행정관이 오르내리는 것은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제 조만간 하계 소대 회식이 계획돼 있으니, 소대장들은 준비 철저히 잘해서 소대원들 회포를 풀어줄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주는 인당 반 병만 마실 수 있게끔 조치하도록! 절대 반 병을 넘기면 안 돼!"
"대장님, 그래도 1년에 한 번뿐인 회식인데, 한 병씩은 마셔야 하지 않나요? 하하하~"
"8000일 무사고 부대의 전통이 깨지면, 사단이 뒤집힌다! 사단뿐만이 아니라 육군 본부 내에서도 주시하고 있으니까 항상 사고 안 나도록 각별히 신경 써라!"
"예, 알겠습니다!"


 전무후무하게 8000일 이상의 무사고 부대를 기록하고 있고, 사단, 군단, 사령부, 육군 본부에서 모두 주시하고 있는 최전방 부대에서, 그 아성을 등에 업고 기세 등등하게 텃세를 부리는 행정관과 이것을 경력 삼아 더 높은 자리로 진급하려는 지휘관들의 검은 속내는 항상 부대를 조용히 가만두지 않았다. 이러한 배경은 경력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잘못하면 대역죄인이 될 수도 있었음을 그때는 크게 인지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정기적인 회식 자리를 마무리하고, 각 소대별로 소정의 지원금을 받아 소대 회식을 준비하였다. 지원금은 받았지만, 많은 소대원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기 때문에 소대장들의 개인 사비 지출은 필수적이었다. 그렇게 소대 회식일에 삼겹살과 소주, 맥주 등을 지시받은 대로 준비한 후 부대 안 야영지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음주가무를 즐겼다. 소대원들은 흥을 감추지 못하고 행복의 비명을 질러댔고, 인당 반 병 기준의 소주는 소대장인 나의 관리 감독하에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소대장님, 오늘 너무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많이들 먹고, 즐거운 시간 가져라!"
"근데 말입니다. 술이 다 떨어졌는데 조금 더 사주시면 안 됩니까?"
"음.. 흥을 깨서 미안하지만 규정은 규정이니 술은 이만 마시고, 고기 먹고 노래 부르면서 즐기렴~"
"흐음.. 다른 소대들은 몰래 소주 몇 병은 더 마셨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음.. 그래? 난 들은 바가 없는데? 그래도 대장님 지시 사항이 있었으니, 안된다. 미안하다!"
"아..... 알겠습니다......"


 풀이 죽은 모습으로 뒤돌아 가는 소대원을 보고 있자니, 그놈의 술 한 짝을 당장이라도 사다가 원 없이 마시게 해주고 싶었으나, 대장님의 명령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쉬운 감정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너무 한 건가? 술을 조금 더 사주면 소대원들에게 인기도 얻고 좋긴 할 텐데....'


 그렇게 소대원들이 배정받은 술을 모두 마시고, 흥이 나서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소대장이었던 나는 슬며시 자리를 피해 바깥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상관인 내가 없는 편이 좀 더 신나고 자유롭게 놀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데서 기인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상황실과 회식 야영지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난데없이 기분 나쁜 소리가 부대 뒤편 야영지에서 들려왔다.


"쨍그랑! 우당탕탕!"
"아아아악! 이 씨발 새끼가...."


 불안한 내색을 감추지 못하고 성급히 야영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해보니 소대 내 병장과 일병 두 놈이 술에 잔뜩 취해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가, 이내 그 말다툼이 주먹질로 번졌던 것이었다. 과격한 싸움에 병장 녀석은 흠씬 두들겨 맞아 이미 이가 3개나 부러지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부상당한 병장은 곧바로 의무대로 이송 조치를 취하였고, 나머지 병력들은 인원 점검 후 모두 내무반에서 대기할 것을 지시하였다.


'아니.. 이게 뭔 날벼락이람? 아까 까지만 해도 분명 아무 문제없었는데?'


 메가톤급 사건으로 어안이 벙벙한 나를 대신해 당직사관이던 3 소대장님이 곧장 부대 비상 연락망을 돌려, 퇴근하셨던 대장님 예하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충성! 대장님, 3 소대장입니다!"
"어, 그래..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소대 회식장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뭐!!!!!!!!! 현장 보존하고 대기하고 있어!!!!!"
"다름이 아니라, 소대원 한 명의 부상 정도가 심각해 의무대에 연락을 취해 이미 구급차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뭐야!!!!!!!!!!!!!!"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 보좌관님 그리고 통제장교님이 상황실로 다급하게 입장하기 시작했다. 보좌관님은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담배를 연신 피워대며 사건 발생 일지를 작성할 것을 요구하셨고, 대역죄인이 된 나는 극심한 우울감과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육하원칙에 의거 사건 일지를 작성하고 또 작성하였다.


"소대장! 이게 초등학생 일기야?! 다시 써! 상세하게 적으란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상세하게 적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써놓았던 글에다가 이리저리 살을 붙여가며 이전보다 조금 더 길게 작성을 한 후 제출하였다.


- 누가? 2 소대장, JJ는

- 언제? 2005년 8월 00일 17시부터 21시경 사이에

- 어디서? 상황실 뒤편 교육 막사에서

- 무엇을? 소대 음주 회식을

- 어떻게? 개인당 소주 반 병을 통제하여 모두 마신 후, 술은 그만 마시고, 소대원들끼리의 자유로운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2 소대장, JJ는 회식 장소를 이탈하여 상황실과 야영장 주변을 오고 가며 소대 병력을 관리 감독하는 중이었습니다.

- 왜? 소대원들에 좀 더 자유로운 회식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첨언할 내용도 없었지만, 8000일 이상 무사고 부대의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사건이니 만큼 상황실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하는 장교들로 번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도중 야영장 폭력 사고 현장 조사를 벌이던 보좌관님께서 한 가지 의문점을 발견했다.


"어이, 2 소대장!"
"네?"
"여기 소주병이 왜 이리 많아?"
"네?"
"네에?? 지금 그게 답변이라고 하는 거야?"
"이럴 리가 없습니다! 저는 정량만 배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나뒹구는 이 소주병들은 도대체 뭔데? 딱 봐도 인당 1 병도 넘는 소주병 숫자잖아!!"
"이럴 리가 없습니다.."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만 하고 있어? 그러면 이 소주들은 땅에서 그냥 솟아났나? 어?!"
"확인해 보겠습니다.."
"넌 도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었는데?"
"저는 상황실에서 당직 사관과 얘기 중이었습니다.."
"네 소대원들이 있는 곳에 없고, 왜 상황실에서 잡담 중이었냔 말이야!!!!"
"소대원들이 불편해할까 봐, 술은 모두 통제하에 마신 후, 자리를 피해 주었습니다.."
"소대원들이 왜 소대장을 불편해하는데? 넌 소대장이란 새끼가 그럼 뭐하는 새낀데?"
"소대원들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걸 아는 새끼가 상황실에서 상황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노가리나 까고 있어?!"
"........"


 무언가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버린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은 흐리멍덩해졌다. 그냥 이 모든 현실이 지독한 악몽이길 기원하며 잘못도 없는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 봤지만, 꿈 일리는 없었다. 그냥 끔찍한 현실이 지옥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소주에 대해 탐문 조사를 벌이다 보니, 정찰 분대장(하사, 부사관)이 부대 울타리를 타넘고 나가서 소주를 추가로 더 사 왔던 것이다. 소대원들이 아양을 떠니, 인기를 얻고 싶었는지 과감하게 소대장인 나에게 보고도 안 하고, 이런 짓을 벌여서 이 사달이 나버린 것이었다.


'젠장할, 이 병신 같은 자식이 인기 좀 얻겠다고 내 명령을 무시해?!!!'


 속으로는 수백 번도 더 욕하고 열받았지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책임을 정찰 분대장에게 물리고 싶었으나, 결국엔 지휘관인 내가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해서 이 지경이 된 것이니, 남 탓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정찰 분대장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정찰 분대장! 잠시만.."
"네.. 소대장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소대원들이 술을 더 마시고 싶다고, 애원을 하길래 제가 술을 더 사 왔습니다."
"제가 술은 더 안 된다고, 말 안 했던가요?"
"말은 하셨지만, 소대원들이...."
"그 소대원들이, 소대원들이 핑계 좀 그만 대세요! 저는 소대원들이 좋아하는데 안 사주고 싶었겠습니까?"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당직 사관이 키도 안 줬다는 데 어떻게 후문으로 나간 겁니까?"
"담장을 타넘어 갔다 왔습니다.."
"하아.........."
"............."
"아무튼, 이 사건은 소대장인 제게 전적인 책임이 있으니, 조용히 입 다물고 계세요.."
"네? 네..."


 그렇게 보좌관님은 대장님이 도착하시기 전 소대장인 나를 포함 소대원들 전원을 상황실에 집결시켜 놓고 대기시켜 놓았다. 대기 중인 시간에 보좌관님은 나와 통제장교를 잠시 작전실로 불렀다.


"2 소대장! 억울하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 같아도 어처구니가 없겠구먼.."
"......"
"미안하지만, 상황실로 돌아가면 나나 대장님이 좀 심하게 대할 거야! 주변에 보는 눈들도 있으니깐.."
"네, 알겠습니다.."
"너무 심하게 해도 상처받지 말고! 아참, 아버님이 헌병대 수사계장이시지?"
"네.."
"전화 한 통화드려봐! 생각보다 상황이 많이 안 좋아.. 2 소대장도 알다시피 우리 부대는 사단 내에서 무사고 부대로 유명하기도 하고.. 항상 이목을 끄는 부대이다 보니.."
"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 마음 좀 추스르고, 어서 전화나 먼저 드려봐!"


 그렇게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폭행 사건이 발생하였음을 말씀드리니, 아버지께서 사건 관련 사단 헌병대에 연락을 취해 보신다고 말씀하시곤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상황실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대장님은 도착해 계셨고, 얼굴 표정이 울그락 불그락 하시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표출하고 계셨다. 보좌관님이 미리 언질을 주셨지만, 불편한 침묵과 싸늘한 기운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충성!"
"..........."
"대장님, 이번 사건에 대한 소대장으로서 제가 책임을 모두 지도록 하겠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을...."
"네가 무슨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지랄이야!! 어?!!!!"


"꽝! 쨍그랑!"


 대장님은 상황실 전화기 중 가장 바깥쪽에 있는 전화기를 잡아다가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아 버렸다. 전화기는 산산조각이 났고, 이어서 대장님의 호통이 들려왔다.


"아니! 뭐 이런 병신 같은 새끼가 소대장을 하니 소대가 병신 같지!!!!!"


 순간 정적이 이어졌고, 상황실과 이어져있던 내무반에도 대장님의 호통 소리는 메아리처럼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한 순간에 전 병력이 보는 앞에서 내가 공적으로 병신 새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수치심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제 겨우 자대 배치 2달째인데, 소대장으로서의 병력들 앞에서 진두지휘할 엄두가 안 난다. 남은 기간 동안 병신 같은 소대장으로 각인된 나의 명령을 부대원들이 잘 따라줄까?'


 오만 가지 감정에 휘둘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정찰 분대장이라는 놈이 하는 행동은 더 가관이었다.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이에 엉거주춤하던 다른 소대원들도 눈치게임이라도 하듯 하나둘씩 비좁은 상황실에서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결국 나를 제외한 모두가 무릎을 꿇었지만, 나의 알량한 마지막 자존심은 무릎을 꿇을 생각이 전혀 없었고, 더더군다나 잘못했다는 말을 할 생각은 일절 없었다. 지휘관으로서 부하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조직에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은 대단히 컸지만, 일개 개인으로서는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잘못했다고 빌 정도로 상황을 구차하게 끌고 갈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시던 대장님은 한동안 침묵하시더니 또다시 호통을 치셨다.


"이 병신 같은 새끼들이 좁아터진 상황실에서 뭐하는 짓거리들이야! 어서 다 내무반으로 꺼져!!!!"


 내부반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들었지만, 상황의 위중함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던 터라 누구 하나 앞장서서 상황실에서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계속 침묵만 흐르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찰나에 또 다른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안 나가! 빨리 나가라고!"


 곁에서 보좌하던 보좌관님이 눈짓 발짓을 하며 어서 나가라는 수신호를 연신 보냈고, 찜찜한 기분을 머금은 채 우리는 내무반으로 이동하였다. 나는 소대원들에게 취침 준비를 할 것을 지시한 후 정찰 분대장과 함께 상황실 밖에서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시간이 흐르자 대장님은 문을 박차고 나오셨고, 한마디 말도 없이 군 관사로 귀가하셨다. 보좌관님은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내일 다시 얘기하자며, 우리들을 BOQ로 복귀시켰고, 나는 수치심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제 어떻게 부대 병력을 통솔하지? 병신 같은 소대장이?'
'지위가 땅으로 추락했는데 부대원들이 나의 통솔을 따를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고, 도망갈 곳이라도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숨을 곳도, 도망갈 곳도, 그 어떠한 안식처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온몸으로 비난을 받고, 무시를 받을지언정 나의 위치와 직책은 나를 지속적으로 폭언과 압박의 소용돌이에 노출시켰다. 그냥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 쪽팔림과 수치심 그리고 억울함, 괴로움, 슬픔, 원망 등의 모든 나쁜 감정들이 나의 내면 안에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회복할 틈 없는 생채기를 쉼 없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극심한 좌절감과 우울감은 나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내팽개쳤으며, 나의 육체는 갈 길을 잃고 흐느적거리는 산 송장마냥 마음대로 멈추지 못하는 숨을 연신 들이마시고 내뱉기만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왜 나의 인생은 항상 남들의 그것처럼 평탄한 길을 갈 수 없느냐고 울부짖으면서 말이다.


끔찍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픈 감정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여전히 아리고, 아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그때는 그 감정에 지배당했을지라도, 지금은 내가 통제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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