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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Aug 30. 2021

집주인과 세입자, 그 멀기만한 사이

세입자의 원상복구, 어디까지 해야 할까

8월 27일 금요일.

오전 11시 30분 조금 넘어 부동산 사무실에 갔다.

원래는 전세금을 돌려받고 이사를 하는데, 여러 가지 사정상 한 달 먼저 이사하고, 새 세입자가 들어오는 날 못 받은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다. 

부동산에서는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에 오면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11시 30분이 넘었는데도 부동산 사무실은 썰렁했다. 12시가 가까워지자 부동산 사장님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지만 사장님 말만으로도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죄송해서 어쩌죠? 이사 올 세입자가 아직 보증금을 받지 못했대요."

"그래요?"

"세입자가 안방에 에어콘을 달았었나 봐요. 집주인이 에어콘 자리가 다른 벽지와 색깔이 다르니 도배를 해놔야 돈을 주겠다고 했다네요."

얼핏 집주인이 좀 심하다 싶었다. 원상복구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세입자가 도배를 하고 있는 중인데, 믿고 보증금부터 줘도 되지 않을까? 또 부동산 사장님 말에 의하면 전세면 세입자가 원상복구를 해놓을 의무가 있지만 월세는 매달 사용료를 냈으니 그럴 이유가 없다고 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 이사 올 사람이 어머니와 함께 부동산 사무실에 왔다. 어머니는 많이 흥분한 모습이었지만 아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했다. 이제 상황이 좀 수습되었나 싶었는데, 끝이 아니었다. 집주인이 원하는 대로 도배를 다 했는데도 보증금 9천만 원을 다 주지 않고 8,700만원만 주었단다. 나머지 300만 원은 이삿짐 다 빠지고 난 후 직접 집 상태를 확인한 다음 하자가 없으면 주겠다고. 

집주인의 까탈은 이미 2주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세입자가 살고 있는데 집을 봐야겠다며 2주 전에 방문해 샅샅이 점검하고, 이런 저런 요구를 했다. 2주 내내 집주인이 지시한 대로 해 놓느라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받았는데, 이사하는 날까지 까탈을 부린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까다로운 분이면 계약할 때 기미가 보였을 텐데요."

안타깝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기미가 보였어요. 하지만 당시 집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도 꽤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다. 내가 집주인이었을 때도 있고, 세입자였을 때도 있었지만 웬만큼 큰 하자가 아니면 서로 묵인했던 것 같다. 물론 집주인 입장에서 보면 에어콘이 달렸던 자리만 구멍이 난 것처럼 색이 다르면 속상할 수 있다. 그 부분을 지적하는 것도 타당해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했을까? 이사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사하는 날은 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동한다. 여윳돈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래 살던 집에서 돈을 받아야 그 돈으로 새로 이사할 집에 돈을 주고 들어갈 수 있다. 어느 한 곳에서 지체가 되면 그 여파로 몇 집이 발이 묶여 고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면 차라리 도배비를 받고 돈부터 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섣불리 어느 한쪽에만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보증금을 받지 못해 발을 동동구르며 초조해하는 젊은 세입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아마 젊은 세입자들이 지극히 상식적인, 착한 사람들처럼 보여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오랜 시간 기다리느라 지쳤음에도 한마디 덕담을 건넸다. 

"새로 이사할 집은 행복한 집이에요. 저희는 그 집에서 잘 살았어요. 이걸로 액땜했다 생각하시고, 새집에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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