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즈유 Sep 27. 2021

사뭇 달라진 명절 풍경, 정말 코로나 때문만일까?

코로나가 바꾼 일상(1)

2021년 설은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차례를 지냈다. 당시 확진자 수는 400~500명 수준이었다. 하루 확진자가 수가 3천명이 넘어버린 지금과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었지만 방역당국은 절체절명의 위기라며 명절에 가족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해달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이미 오랫동안 거리두기를 해왔는데, 명절조차 가족들을 만날 수 없다니 기가 찼다. 특히 시댁은 형제간의 우애가 매우 돈독한 집이다. 명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서로의 생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요즘 보기드문 가족이다. 그럼에도 코로나 유행을 잠재우는 것이 먼저라며 모이지 않고, 비대면 화상회의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차례에 동참했다. 

결혼 초에는 시댁의 문화가 생소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어찌나 친척들이 자주 모이는지 짜증이 났다. 시어머니가 음식 준비를 혼자 다 하시는데도, 친척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싫었다. 주중에 열심히 일했으니 주말에는 쉬고 싶은데, 친척 어른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시끄럽게 떠들고, 밤이 깊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그나마 점차 집에서보다 밖에서 외식하는 형태로 모임이 바뀐 게 다행이었다. 

 명절 때는 당연히 음식을 다 집에서 했다. 추석에는 송편, 설에는 만두를 빚는데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송편은 먹기는 편한데 정말 손이 많이 간다. 특히 쌀가루를 반죽하다보면 손목이 시큰했다. 처음부터 물을 많이 넣으면 질척해지니 뜨거운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치대야 한다. 그렇게 끝도 없이 손목에 스냅을 주면서 치대다보면 조금씩 쌀가루가 촉촉해지면서 윤기가 돈다. 이미 손목이 화끈거리는데, 진짜 송편 빚기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먹기 좋은 크기로 반죽을 떼어내 손바닥으로 동글동글하게 만들고, 공기처럼 속이 옴폭 들어가게 한 후 속을 넣고 반죽을 여민 다음 모양을 잡는다. 시어머니는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를 격려했지만 왜 사서 먹어도 되는 송편을 일일이 빚어야 하는지 불만스럽기만 했다. 

만두를 빚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당면, 김치, 부추, 김치, 소고기 등 오만가지 재료를 다 다듬고 잘라 버무리는 데 족히 한 나절은 걸린다. 만두피라도 사서 하면 일이 줄텐데, 시어머니는 밀가루를 반죽해 직접 만두피를 만드는 걸 고수했다. 

젊은 새댁 시절의 명절은 그저 하루 이틀, 빡세게 일해야 하는 노동의 시간에 불과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명절 음식을 만들다보면 삭신이 쑤시고, '아구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시어머니가 나이가 들고, 며느리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명절 분위기는 점차 바뀌었다. 제일 먼저 바뀐 게 송편과 만두를 사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일은 반 이상 줄었다. 나를 포함한 며느리들은 또 머리를 썼다. 보통 명절 때는 하루 전에 모여서 함께 음식을 만들었는데, 3명의 며느리가 각자 맡아야 할 음식을 정하고, 각자의 집에서 편하게 만들고, 명절 아침에 모이기로 했다. 아침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점심 전에 흝어졌다. 

처음에는 좋았다. 내 나이 40대 중후반부터 명절 당일 아침에 모이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몇 년이 지나자 예전의 명절이 그리워졌다. 예전에는 비록 몸은 힘들었어도 저녁 식사를 한 후 아이들까지 포함해 화투놀이나 윷놀이를 하며 노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명절 당일 모여 차례를 지내고, 후다닥 아침식사를 하고 헤어지니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도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할 수 없게 되자 섭섭함은 더 커졌다. 이번 추석 때는 집에서도 8명까지만 모일 수 있어 막내네 가족이 빠져야 했다. 그냥 모일까 생각도 했지만 워낙 준법정신이 투철한 큰형의 반대가 컸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예전의 일상을 찾을 수 있을까? 솔직히 의문이다. 명절 풍속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코로나 이전부터이다. 언제부터인가 명절에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대신 가족이 혹은 개인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족 모두가 시간을 맞춰 함께 여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명절 연휴를 이용해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가고 싶지만 못 가는 것과 싫어서 안 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코로나를 핑계로 부모님들이 오매불망 자식들을 기다리는데도 코로나를 핑계로 안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젊은 날의 나처럼 명절이 싫지만 과감하게 안 가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참 좋은 핑계거리가 되는 것 같다. 자꾸 변해가는 명절 풍속도가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인 변화라고 믿고 싶다면 내가 너무 순진한 것일까? 아니면 그리 가치도 없는 전통 가치에 목을 매는 꼰대기 때문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집주인과 세입자, 그 멀기만한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