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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Apr 05. 2022

문체는 성격과도 같다

문체는 문체일 뿐, 좋은 문체는 없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글 쓰는 방법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감수성 강한 표현을 주로 사용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논리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자기 생각을 풀어내는 사람도 있다. 짧게 끊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참을 읽어야 한 문장이 끝나게 쓰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감수성과는 거리가 멀다. 감정이 메마른 것은 아닌데, 기자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글이 딱딱한 편이다. 어떤 사실이나 메시지를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글은 그런대로 쓰지만 감수성 풍부한, 문학적인 글에는 영 젬병이다. 그래서 문학적인 글을 맛갈나게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감수성 풍부한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주로 기자로,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를 만드는 출판 편집인으로 일해 왔기 때문에 다소 건조하고 논리적인 내 글 스타일이 오히려 잘 맞았다. 얼마나 글을 문학적으로 다채롭게 표현하기보다는 사실이나 메시지를 얼마나 명료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예 결이 다른 문학적 글쓰기는 논외로 치고, 논리적 글쓰기, 실용적 글쓰기만을 놓고 봐도 사람마다 저마다의 문체가 있다. 문법적으로 오류는 없지만 자기 스타일이 아닌 글을 읽을 때는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 반대로 나와 스타일이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으면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고백하건데, 지금까지 나는 나와 다른 문체에 인색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와 다른 문체로 쓴 글을 읽으면 자꾸 걸리는 느낌이 들어서 결국 내 스타일 대로 고친 경우가 많다. 그래도 잘 고쳐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분들이 많아 내가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아주 드물게 ‘왠지 제 글이 아닌 것 같아 어색하다’는 분들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 판단에는 너무 글이 산만해 수정이 불가피했고, 다른 사람이 수정하면 어느 정도 낯선 느낌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이해하고 치유하기 위한 글쓰기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문장이 오류가 없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굳이 그 사람의 문체를 훼손하면서까지 수정할 필요가 있을까? 수정한 글이 더 매끄럽게 읽힐 수는 있겠지만 그 또한 지극히 주관적인 내 판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스타일과 달라 어색할 뿐, 원래 글을 쓴 저자와 다른 사람들은 저자의 스타일에 더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원문) 이 당연한 것을 이질적인 경험을 통해서야 비로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우주로 나가지 않아도 목적지 없는 일탈적인 시내 투어로도 깨달음은 가능한 것이 우리 인간이다. 


(수정) -> 굳이 우주로 나가지 않아도 이질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내가 그랬듯이 목적 없이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원문과 수정한 글 중 어떤 글이 더 와 닿는가? 분명 두 글은 같은 내용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수정한 글이 좀 더 술술 읽힐 수는 있지만 어쩐지 원문 저자 고유의 글맛은 희미해진 느낌이다. 실제로 원문을 쓴 저자는 에세이 류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좋아하지 않고, 진중하고 묵직한 스타일로 글을 쓴다. 

그 사람이나 다름없는 문체를 다소 부자연스러워도 그냥 살려두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글, 문체가 곧 나임을 확인한 후 나는 다른 사람의 글을 수정해야 할 때 많이 조심한다. 문장 오류는 당연히 잡아야 하지만 가능한 한 저자 고유의 문체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구나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나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으면 서툴러도 괜찮다. 서툴지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쓰면 그 글이 곧 나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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