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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Apr 16. 2022

글을 쓰면서 내가 나를 인터뷰한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잠이 안 올 때 네가 재미있어 하는 걸 해봐. 넌 뭘 좋아하니?”

불면과 우울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닌다. 불면이 지속되면 우울해지고, 반대로 우울해도 잠이 안 온다. 나도 불면과 함께 우울해지기 시작했고, 불면이 깊어질수록 우울함도 심해졌다. 그럴 즈음 나를 아끼는 지인들이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조언했다.

지인들의 조언은 일리가 있었다. 불면이 깊어질수록 나는 하루 종일 ‘잠’에 집착했다. 인터넷을 뒤지며 다른 불면 동지들의 사례를 훑어보고, 어떻게 불면을 극복했는지 보고 또 보았다. 불면은 사랑과 많이 닮았다. 사랑을 얻으려면 적당히 밀당을 잘해야 한다. 사랑한다고 무조건 들이대면 상대방은 멀리 도망간다. 반대로 무심한 척, 거리를 두면 먼저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갖는다.

잠도 마찬가지다. 자려고 하면 더 잠이 안 오고, 차라리 안 자고 만다는 마음으로 잘 생각을 안 하면 오히려 잠이 온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잠에 대해 조금은 초연해지기 위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다른 무언가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깜짝 놀랐다.      


그 많던 호기심은 어디로 갔을까?

난 비교적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만큼 하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 내가 뭘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하는데 떠오르는 것이 몇 개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것, 마음 잘 맞는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좀 더 머리를 짜내니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을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코로나 때문에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헬스장에 몇 달 째 가지 못했더니 잊어먹었던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몇 가지 안 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코로나의 방해로 예전만큼 자유롭게 즐기기가 어려웠다. 영화나 드라마는 아쉬운 대로 TV로 해결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수다는 주로 전화를 이용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만나기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에서 만나서 장시간 수다를 떨기란 민폐처럼 느껴졌다.

러닝머신에서 뛰기는 대체할 방법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뛸 수는 있었다. 답답한 실내보다 야외에서 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상하게 나는 러닝머신에서 뛰는 걸 좋아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 컨디션에 맞게 속도를 조절해가며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 보면 운동복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나는데, 그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땀과 함께 복잡한 생각과 몸 속 노폐물이 싹 빠져나간 느낌이다.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러닝머신은 큰 역할을 했다. 큰 병은 없지만 환절기와 겨울만 되면 감기를 달고 살았던 나였는데, 러닝머신에서 뛰면서부터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다. 불면증이 생긴 후 ‘혹시 운동을 안 해 불면증이 생겼나?’ 의심했던 적이 있다. 보통 일주일에 3~4번은 러닝머신에서 뛰는데, 2019년 12월부터 게을러져서 일주일에 한 번도 못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번 아파트 단지 내에서 땀이 날 때까지 달려보기도 했는데, 이후 체력이 점점 더 떨어져 더 이상 달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더 이상 좋아하는 게 생각이 안 나 ‘좋아하기는 하는데 여건이 안 돼 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았다. 여행 말고는 없었다. 호기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라도 관심을 갖고 배워보거나 즐기고 싶은 것들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호기심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를 의미한다고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호기심이 줄어든다면 나는 내 물리적 나이보다 훨씬 나이를 더 먹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했다.      


생각보다 나는 나를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보다 호기심을 잃은 나이든 중년 여성으로서의 나를 발견하고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만큼 내 자신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믿었는데, 정말 나는 나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불면증이 시작되면서 의외의 내 모습을 많이 보았다. 나조차도 너무 낯설어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는 내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나를 알고 싶어졌다.  

나는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자를 꿈꿔 대학도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비록 컴퓨터 전문지이긴 해도 기자가 되었으니 나름 꿈을 이룬 셈이다. 기자는 질문을 잘해야 하는 사람이다. 제대로 질문해야 상대방이 제대로 답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기 전에 꼭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보고 질문할 내용을 정리했다. 기자 시절의 경험을 살려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질문을 적어보았다.      

1.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2. 내 성격의 장점과 단점은?

3.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4.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5.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6.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냥 나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도 되지만 미리 몇 가지 질문을 정해놓고 써야 좀더 세세하게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그때의 감정과 상황에 충실하게 썼다. 내가 나에 대해 쓰는데 객관적일 필요도 없고, 옳고 그름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을 글로 쓰면서 가장 감정이 올라왔던 항목은 ‘3.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과 ‘5.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이다.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싶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아무 일 없이 일상을 산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밥을 먹고, 같이 TV를 보고 때가 되면 잠자리에 들어 잠을 자고, 아침 햇살과 함께 일어나는 일상.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일상을 되찾고 싶다. 다른 욕심은 이제 없다.      

나뿐만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을 그리워한지 이미 오래다. 불면증 이전의 나는 무엇을 원하였을까? 가족의 건강과 행복은 언제나 원했을 것이고, 내가 만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기를 원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너무도 간절하게 평범한 일상을 찾고 싶다고, 다른 욕심은 없다고 쓴 글은 지금 다시 봐도 울컥하게 만든다.

‘5.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에 대한 글도 예전의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큰일을 겪고 나면 변한다고 한다. 나 또한 불면증 전후가 많이 다른데, 5번 질문에 대한 답을 쓰면서 내 삶의 관점이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나는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을 즐긴다. 목표를 이루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설령 실패해도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데도 강하다.

또한 나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열심히 산다는 것에 대한 내 기준이 분명히 있는데,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잔소리를 많이 했다. 정말 그 사람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걱정스럽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열심히 살자고 한 말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해도 여전히 바뀌지 않고 내 삶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함부로 ‘제대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한 것은 정말 후회스럽다.

나는 스스로를 교만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자기 삶의 잣대로 남을 평가했다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이었는지 이제야 깨닫고 후회한다. 저마다 삶의 가치가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데, 내가 실수했다. 나의 교만함에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었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자기 성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나를 탐색하는 글인지, 삶을 반성하는 글인지 구분이 잘 안 갈 정도이다. 그래도 내가 나에 대한 질문과 답을 글로 쓰면서 개인적으로는 참 좋았다. 워낙 나는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내가 하는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자기중심적일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나의 다른 모습들을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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