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자서전/힐링 글쓰기
“아버님. 아버님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한번 글로 써보세요.”
2014년 가을로 접어들 무렵, 나는 대학 노트 두 권을 아버님께 건네며 책을 쓸 것을 권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당시 2년 전부터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병세가 악화돼 더 이상 집에서 간병하기가 어려워 요양원으로 가신 직후였다. 그 전까지 어머님을 돌보는 일은 오롯이 아버님이 도맡았다. 자식들이 순번을 정해 먹을 것도 챙기고, 어머님을 살펴드렸지만 아버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자식들이 선뜻 아버님을 대신해 어머니를 간병할 처지도 아니어서 무거운 마음으로 요양원에 모셨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집에 돌아온 후 아버님은 눈물을 보이셨다. 아버님뿐만 아니라 자식들도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눈물을 쏟았다. 군인 출신으로 항상 강인했던 아버님이 눈물을 보이며 허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앞섰다. 50여 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했던 어머니 없이 아버님 혼자 잘 지내실 수 있을까? 혼자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너무 힘드실까봐 책을 써보시라 권한 것이다. 살아온 세월을 되짚으며 책을 쓰다보면 잠시나마 현재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책을 쓰냐? 대단한 삶을 산 것도 아닌데”
아버님은 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책은 유명한 사람만 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다. 부담 갖지 마시고 소일거리 삼아 쓰시라’고 권하고 물러났다. 아버님은 한번 아니라고 하면 아닌 분이다. 또한 쓰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억지로 권해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로서는 책을 쓰라 권해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자꾸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나 서럽구나
아버님께 책을 쓰시라 권하고 1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매주 주말마다 아버님을 모시고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는데, 아버님이 불쑥 한마디 하셨다.
“책을 쓰다 보니 마음이 많이 힘들구나. 어쩌면 내 인생은 그렇게 굽이굽이 어려운 일들이 많았는지․․․․․․, 환란이란 환란은 다 겪은 것 같다.”
아버님이 책을 쓰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책을 쓰면서 마음이 자꾸 힘들어진다는 말에 더 놀랐다. 소일거리 삼아 써보시라 권한 것인데, 책을 쓰는 일이 예전의 잊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일들을 상기시키고 그때의 감정을 소환시킨다면 잘못 권한 것 아닌가 싶었다.
아버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은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오래 붙잡고 있나?’ 의문이 들었다. 시어머니도 치매가 오기 전에 당신의 인생이 너무 불쌍하다며 종종 분노하셨다. 주로 혹독한 시집살이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는데, 어머니의 시어머니를 원망해서인지 아버님까지도 도매급으로 나쁜 사람으로 몰곤 했다. 아마도 시집살이를 할 때 아버님이 고부간의 갈등을 모른 척하거나 어머니 편을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그때도 이상했다. 내가 본 아버님은 자상한 남편이었다. 젊었을 때는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한 외모로 ‘춘향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다른 여자에게 한 눈 한번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남편이 인물값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몇 번 부적을 쓰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나는 아는 아버님은 가족에 헌신하며 시계처럼 정확한 일상을 반복하는 모범 가장이었다.
꼭 남편이 아니라도 어머니 인생은 불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3남 1녀 자식 모두 착하고,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며 큰 부자는 아니라도 경제적으로 큰 불편 없이 산다. 나는 좀 아니지만 며느리들도 착하다. 가족들 생일이면 꼭 모여 축하해주고, 서로 배려해준다. 열 살 이상 어린 막내 동서도 마음 쓰는 게 나보다 어른스럽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모두들 화목한 가정이라며 부러워했다.
그런 시어머니가 어느 날부터 ‘너무 억울하고 서러운 인생’이라고 슬퍼하며 분노하는데 공감하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아프기 전에는 늘 ‘고맙다’, ‘행복하다’며 당신이 복이 많다고 하셨다. 그랬던 시어머니가 ‘억울하고 분하다’며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치매가 참 나쁜 병이라고 생각했다. 왜 하필 좋은 기억은 잊게 하고, 안 좋았던 기억들만 선명하게 만들어 어머니 인생을 송두리째 불행하게 만드는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건강한 아버님도 옛 일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당신의 인생이 너무 가여워 힘들다고 하시니 ‘이게 뭐지?’ 싶었다. 원래 사람은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나 싶어 인터넷을 뒤졌다. 생각보다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을 더 많이, 오래 기억한다는 연구결과가 많았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로라 카스텐슨(Laura Carstensen)은 부정적인 기억이 오래 남는 이유로 ‘진화론’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꽃에 반응하는 것보다 사자를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보니 부정적인 경험과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많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더 먼저 올라오는 게 맞는 것 같다. 여기서 좋지 않은 상황이란 몸이나 마음이 아프거나 경제적으로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말한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자꾸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고 감정이 불안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어머니는 병 때문에, 아버님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인생무상을 느끼며 쓸쓸해할 때여서 좋은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쁜 기억이 먼저 올라왔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처음 글을 쓸 때 좋은 생각보다는 나쁜 생각을 많이 했다. 예전에 목표를 세우고 강한 의지로 이루어내던 내 모습은 기억이 안 나고, 불면증이 안겨준 고통과 그로 인해 엉망이 된 일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글쓰기는 분명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그랬고, 내가 그랬듯이 처음에는 상처가 더 아플 수 있다. 이 아픔은 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호전 반응과도 같다. 겉으로는 증상이 더 악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낫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호전반응인 줄 모르고 당장의 아픔이 너무 커서 치료를 중지하면 상처는 더 깊어질 뿐이다. 그러니 처음에는 아파도 더 솔직하게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글로 풀어내야 한다. 제대로 자신의 병과 마주해야 비로소 치유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쓰면 가벼워진다
아버님이 옛일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말씀을 듣고 솔직히 괜한 일을 벌였다 후회했다. 2015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정년퇴임을 준비하면서 책을 쓰셨다. 아버지가 책을 낼 때만 해도(1989년) 손으로 원고를 쓰고, 그 원고를 보며 한자 한자 글자를 찾아 활자판을 만들고 인쇄를 하던 시절이었다. 인쇄 과정 자체도 원시적인데다 원고가 한글 반, 한자 반이어서 읽기도 힘들고 오자도 엄청 많았다. 디자인이랄 것도 없이 텍스트만 죽죽 흘린 촌스럽기 그지없는 책이지만 아버지가 안 계신 지금 그 책은 아버지가 남긴 너무도 소중한 유품이다.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분명 읽었던 책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다시 보니 아버지가 얼마나 한평생 열심히 사셨는지를 알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시아버님도 책을 쓰면 소일거리도 되고, 나중에 후손들에게도 좋을 것 같아 권했던 것인데, 책을 쓰면서 힘들고 아프다고 하니 난감했다.
시아버님은 다른 형제나 며느리에게도 책을 쓰는 고충을 이야기하셨다. 다들 별 말은 안 했지만 나는 괜히 주눅이 들어 ‘힘들면 그만 쓰시라’고 말해야 하나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1년 여 정도 흘렀다. 어느 날 아버님이 원고를 거의 다 썼는데, 몇 가지만 확인하고 넘겨주시겠다고 했다. 당신의 기억이 틀릴 수도 있으니 여동생들의 기억과 대조한 후 마무리를 하신다는 것이었다.
또 한번 놀랐다. 힘들어서 안 쓰고 싶어 하시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원고를 완성했다니.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법 글 좀 쓴다는 분들도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결국 끝을 내지 못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책 한 권을 쓰려면 꽤 긴 호흡이 필요한데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려는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주쯤 후에 완성된 원고를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당시 현재 시점까지의 이야기를 쓰셨는데, 왜 책을 쓰기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원고를 보니 알 것 같았다. 아버님은 1931년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한국에서는 살기 어려워 일곱살 때 할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이사를 가셨다. 춥고 먹을 것도 많지 않은 만주에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살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전쟁 통에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아버님은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지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은 군인이 되어 26년을 사셨다.
내가 아는 아버님과 책 속에서 만난 아버님은 많이 달랐다. 고작 중학생의 나이로 가장이 되어 어머니와 할머니 여동생 셋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내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무게였을 것이다. 매 순간이 전쟁처럼 치열하고 아슬아슬했으니 그 시절을 생각하며 글을 쓰면 당연히 마음이 아리고 아팠으리라.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괜히 눈물이 났다. 가난한 집안에 시집 와 시어머니, 시할머니 잘 모시고, 아이들 잘 키우고, 늘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희생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글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원고를 다 쓰고도 책이 나올 때까지는 약 반 년 정도 걸렸다. 원고는 훌륭했다. 글도 잘 쓰셨고, 책을 여러 번
써 본 분처럼 에피소드별로 제목을 잡고, 사진에 대한 설명까지 달아놓으셨다. 교정은 가능한 한 최소화했다.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으면 아버님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두었다.
빨리 책을 내려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아버님은 완성된 원고를 나에게 주면서 ‘네 덕분에 2년 동안 소일거리 잘했다’고 말씀하셨다. 원고는 다 썼지만 이후 책을 만드는 과정 전부 아버님에게 즐거운 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래서 일부러 과정마다 아버님과 의논하고 승인을 받으며 책을 완성해갔다.
서점에서 판매할 책은 아니었기에 100부를 소량 인쇄해 가족끼리 조촐한 출간 기념 파티를 했다. 아버님은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처음에는 힘들고 안 좋았던 기억들을 쓰면서 힘들었는데, 책을 만들고 나니 쓰길 잘했다’고 말씀하셨다. 원고를 보니 내가 자서전을 쓰시라 권할 때 전혀 생각이 없으셨던 게 아니었다. 써 볼까 궁리를 한 적도 있었는데,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데, 누구 보라고 쓰나 싶어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다 내 권유를 받고 책을 볼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척 등 가까운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당신의 살아 온 세월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바꾼 것이었다.
아버님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책 쓰시라 권유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쓸 때는 아픈 기억들이 오래된 상처를 다시 헤집어 힘들었겠지만 계속 글을 쓰면서 아픈 기억들이 단지 아픈 기억만이 아니라 당신이 열심히 산 증거이기도 한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아픈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 좋은 일도 혼자만 알고 간직하기에는 너무 무겁다. 애써 외면하면 잠시 기억이 안 날 수는 있지만 애초의 무게가 줄지는 않는다.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줄이려면 겉으로 드러내고 표현해야 하는데,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다. 글을 잘 쓰냐, 못 쓰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글을 쓰다보면 억눌렸던 감정이 표출되고, 그만큼 무거웠던 마음도 가벼워질 것이다.